(시편 109:16-31,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시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107편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시작했다.

109편은 시인(다윗)이 대적으로부터 무고하게 공격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것으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다.
여기서도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의지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주님의 인자하심은 죄인이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변화되도록 감화하시며
마침내 돌아올 때 용서해주시는 자비와 긍휼이다.
선하심은 좀더 광범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아마도 선의를 가지고 대한다는 선대의 뜻이 가능하며,
또한 악함의 반대로 옳음의 뜻도 가능하다.
그러면 인자하심과 선하심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사랑과 공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개념은 사람에게서는 대개 충돌을 일으킨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사랑과 공의가,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언제나 공존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동시에 행하신다.

사람에게는 인자함이 얼마든지 선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선함이 인자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선하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자하시다!
하나님은 대적에게 불의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시인을
그냥, ‘팔이 안으로 굽어서’, 편향적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대적이 악하고 그의 불의를 심판하시면서 고난당하는 자를 구하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선하시다.

반면에 불의를 행하는 자를 하나님은 벌 주심으로 공의로 다스리신다.
그것은 대적에게나 자기 백성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때 누구에 대한 편향된 사심 때문이 아니라 불의하므로 정당하게 징계하신다.
그러나 그 벌은 그를 미워하여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고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도 그가 죄에서 벗어나 의의 길로 나오기를 바라시며
그러한 기회가 되도록 벌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자하시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나 아직 안 믿는 자에게나 마찬가지다.

성도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사모하는 자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선하심을 알고 그 선하심 앞에서 겸손하며 두려워한다.
결코 경거망동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인자하심을 알고 그 인자하심 앞에서 감사하며 소망한다.
결코 원망하거나 절망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나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요 사명이다.
나의 성품이 얼마나 인자하며 선해야 하는가.
나의 사랑은 얼마나 공의로워야 하는가.
나의 공의는 얼마나 사랑이어야 하는가.
나의 치우침과 모자람을 더욱 고쳐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