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7:23-43, 고요한 광풍, 잔잔한 물결)

오늘 본문의 앞 단락은 “바다”에서 만난 “광풍” 속에서 지은 시다.
아, 그 상황에서 어떻게 시를 짓겠는가!
이 구절은 광풍을 만나 죽을 뻔하였던 자가 쓴 것이 분명하다.
선지자 요나가 경험한 것이 이와 똑같았을 것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만난 “광풍”도 이러하였을 것이다.

거대한 폭풍의 바다에서 요동하는 배에 탄 사람은 어떠할까?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인간의 극한 상황을 잘 아는 자의 시라서 마음이 놓인다.
이것은 세상에서 아무 고난을 겪지 않고 승승장구하기만 한 자가 문학 솜씨로 지어낸 시가 아니다.
시인은 밑바닥을 아는 자이며, 실패를 경험한 자다.
광풍에 흔들리는 배에서 속수무책으로 절망에 내동댕이쳐졌던 자다.
그는 영혼이 녹았던 자다.
아, 성경에 이렇게 인생의 절망과 실패를 아는 자의 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위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신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광풍에 흔들리는 배의 위험을 아신다.
그 속에서 영혼이 녹으며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는 자를 아신다.
그리하여 모든 작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의 절규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신다!
아, 그리하여 그들은 광풍을 벗어나 “평온함”을 누리며 “항구로” 돌아온다.
광풍이 고요해졌다.
폭풍이 끝났다.
그 거센 물결이 잔잔해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며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다.

요나는 광풍을 만나 바닷속에 던져졌다.
바다에 빠지는 중에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사흘 동안이나 고기 뱃속에 갇혀 있었다.
제자들은 밤중에 요동하는 배에서 혼란에 빠져 주님을 불렀다.
그 배에서 주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바다의 바람과 함께 제자들의 황급한 두려움을 꾸짖으셨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주님을 믿지 못한 불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결국 주님은 광풍을 고요하게, 물결을 잔잔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광풍은 결국 고요해진다.
세상에서 요동하는 모든 물결은 마침내 잔잔해진다.
아, 내가 조금더 믿음이 있다면
나는 광풍을 볼 때 그것이 고요해질 것을 알 것이다.
그 물결이 곧 잔잔해질 것을 알 것이다.
즉 모든 광풍은 고요한 광풍이며 모든 물결은 잔잔한 물결이다!
이것은 내가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는 든든한 이유가 된다.
나는 요동하는 세상에서 든든한 반석에 서 있는 것이다.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고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지만,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요 전능하신 사랑의 능력이다.
참으로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