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7:1-22, 하나님의 선하시며 인자하심)

시인이 감사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무엇인가?
이미 106편에서 언급한 출애굽과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하신 사건이다.
속량, 즉 하나님이 값을 대신 치러주시고 죄인들을 풀어주셨다.
그것은 그냥 곤경에 처한 자에게 선심을 쓰는 원조가 아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 즉 하나님께 원수가 된 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당하심으로
죄인을 용서해주신 긍휼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적선이 아니라,
죄인을 의인으로 회복시켜주시는 권능이다.
그리하여 광야에서 갈 바를 몰라 방황할 때 친히 길이 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주리고 목이 말라 피곤하였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을 먹었다─
주셨다.

선하고 인자하지만 무능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누군가를 도와줄 마음은 있지만 수중에는 한 푼의 돈이 없어 한 끼도 공궤할 수 없다면,
아픈 자를 측은히 여기지만 고쳐줄 실력이 없는 의사라면,
바로 이런 경우다.
반면에 능력은 있지만 선하거나 인자하지 않은 자가 또 얼마나 많은가!
작은 자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많은 돈을 가진 부자라도 오로지 인색하기만 하다면,
온갖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명의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마음이 아주 교만하여 환자들이 다가갈 수 없는 의사라면,
바로 이런 경우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시고 전능하시다!
성경은 시종일관 연약한 자들의 작은 신음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죄인들의 회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지 않았는가!
나는 그 은혜를 날마다 받고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줏대 없이 ‘오냐오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죄인이 마음대로 죄를 짓고도 편안하도록 봐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인격의 사람으로 회복되도록 훈계하고 꾸짖고 바로 잡으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신다.
마음을 교만하도록 북돋는 자와 겸손하도록 훈육하는 자 가운데
누가 사랑하는 자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하나님은 참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가르치시고 이끄셨다.

지금도 모든 성도를 이렇게 이끄신다.
내가 어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감사와 찬양이 마땅하며,
더 나아가서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내가 이제는 선하고 인자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셨으니 나도 연약한 자를 돌봐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