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6:32-48,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여러 번 건지심)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결코 죄 짓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죄는 더 심화되었고 심각해졌다.
문제만 있으면 그것은 죄악의 구실이 되었다.
백성들의 죄는 지도자를 격노케 하면서 죄 짓게 했다.
가나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삶으로써 땅을 회복해야할 사명은 헐값으로 팔렸다.
그들은 사명을 망각했다.
“곧 잊어버리”는 것이 그들의 특기이지 않은가!
그들은 이방 나라에게 오히려 죄를 더 많이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방을 정화시켜야 할 그들이 이방의 우상을 따라 숭배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가나안을 더럽혔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은 전적으로 마땅하다.
만일 하나님이 노하시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에 무관심하시든지 하나님이 무능하신 것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징계하시고 돌이키도록 벌을 주신다.
그 벌에는 이방을 따라 하므로 아예 이방에게 지배당해 복종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된다.
아, 이스라엘은 결국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는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세워진 나라가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으로 종식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이스라엘을 노하시며 벌주기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그들이 돌이키기를 기다리셨으며
징계하시다가도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셨다.
아, 이스라엘이 “곧 잊어버리”는 장기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는 특기를 발휘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고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셨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늘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늘) 기억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죄 지은 이스라엘에게 번번이 긍휼을 베푸셨다.

시편 106편은 대체로 출애굽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으로써
이스라엘의 범죄와 하나님의 진노 및 긍휼을 세세히 보여준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은 출애굽 이후의 사건도 포함한다.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이것은 사사시대에 계속 반복되었던 일이며,
또한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의 종말이기도 하다.
즉 출애굽 시대에 지은 죄에서 이스라엘은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은 출애굽 때나 사사시대나,
심지어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을 당한 뒤에도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이 시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 그렇다면 이 시는 신약시대 성도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내 일생과 일상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역사 아닌가!
나는 “곧 잊어버리”는데 하나님은 “여러 번 ··· 건지”신다.
아, 이제는 그 “교묘하게 거역”하는 일을 그만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