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5:24-45,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이스라엘(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기근의 때에 식량 조달의 목적 때문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신 요셉을 통하여 이미 애굽이 은혜를 입고 있었다.
요셉이 없었다면 애굽은 7년 흉년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셉은 소년수에서 총리로 놀라운 반전을 하였지만
그 이후로 이 은혜는 잊히고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요셉을 말씀으로 단련시킨 하나님의 민족적 훈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애굽의 박해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대적들의 마음이 변하게 하여 그의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들에게 교활하게 행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선한 애굽을 악하게 만들어 이스라엘을 고생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가시기를 원하셨고
애굽의 강퍅함을 이스라엘의 단련으로 이용하셨다고 할 수 있다.
성도는 고난의 상황도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서 인내의 기회로 삼는 자다.
고난 없이는 거룩함으로 자라지 못한다.

단련은 고귀한 목적을 위한 방편이요 과정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400년이면 얼마나 충분한 단련이요 준비인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다.
몰래 도망친 것이 아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은 금을” 바쳤고 “기뻐하”며 이스라엘을 보냈다.
환송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즐겁게 나오게” 되었다.
정치적 해방의 기쁨 이상이었다.
그것은 “단련”된 자의 기쁨이다.
단련된 자는 이제 목적을 이룰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자를 먼저 단련을 시키신 것이다.
준비된 자, 훈련된 자로 이스라엘이 뽑힌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단련시킴으로 인내하고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가나안은 이제 이스라엘의 사역지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