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5:12-23, 말씀의 단련)

이 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서사시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가나안에 사는 때부터 애굽으로 이주할 때까지의 내용이다.
야곱의 일생에 해당되는 기간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인물과 사건은 그의 아들 요셉이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린 사건이
야곱 식구들 전부가 애굽으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곱은 가나안에 있을 때 소수로서 나그네 삶을 살아야 했다.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해주심으로
나그네로서 해를 당하지 않았다.
기근이 있었지만 요셉을 통해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다.

사실은 요셉이 형제들의 범죄로 애굽에 팔렸으니
그것은 비극적인 가족사다.
그러나 단지 인간의 잘못에 의한 엎질러진 물로 역사가 흐르는 것은 아니다.
범죄 사건이 분명하지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앞서 보내”신 가정의 구원사다.
아니 그것은 민족의 구속사로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억울한 소년 요셉을 특별히 보호해 주셨다.
타국에서 하나님의 보호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를 강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고통을 줄이신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그를 더욱 강하게 하셨다.
그는 애굽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다.
형제들도 그를 팔아버리는데
그 누가 요셉을 봐주겠는가.
그가 충성을 다한 주인에 의해 그는 투옥까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는 특별한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더욱 더욱 강하게 하셨다.
그는 복수심과 증오에 불타면서 강해진 것이 아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자기 일을 충실히 하고
사람을 도우며 악을 선으로 이기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훈련을 잘 견뎌내었다.
그리하여 범죄의 피해자가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먼저 보내신 것’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는 형들을 다 이해하고 용서했다.
그는 말씀으로 단련 받는 일에 합격한 것이다.

이것은 이후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범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범이 되고 안 되고는 백성들의 순종에 달린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게도 마찬가지다.
요셉의 ‘말씀의 단련’은 모든 성도가 따라야 할 사표다.
나는 단련되기를 얼마나 사모하는가?
나의 기도제목은 편해지는 것인가, 강해지는 것인가.
형통해지는 것인가, 거룩해지는 것인가!

말씀의 단련이라 함은 듣기 좋은 말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다.
쓴 소리와 질책을 들을 줄 아는 것,
모든 일에 핑계 대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
억지로 하지 않고 변화될 소망으로 감사히 견디는 것,
이것이 단련이다.
하나님, 저의 귀와 마음을 단련시켜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