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1-11, 제2의 출애굽)

유다의 바벨론 포로와 해방은 분명 출애굽 사건과 직접 관련된다.
거의 1000년 가까운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 사이에는 긴밀한 내적 연관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온 가족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결국 노예로 400여 년을 살다가 하나님의 극적인 인도로 애굽에서 해방되었다.
또한 유다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강대국의 노예와 포로의 상태에서 해방된다는 점이 동일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의 핵심이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출애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애굽을 하나님이 치심으로 이스라엘이 해방되었고,
바벨론으로부터는 하나님께서 “바사와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유다 백성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선처하였다는 점이다.
전자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이라면,
후자는 바사(페르시아)가 유다를 내보내 준 것이다.
둘 다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지만
후자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유다의 요청이 있기도 전에 바사 왕이 먼저 귀환을 제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

두 사건은 모두 성막 및 성전의 건축으로 귀결된다.
출애굽을 한 지 정확히 1년 뒤에 이스라엘은 성막의 건축을 완공했다.
그 성막의 재료는 출애굽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받은 많은 귀중품들이었다.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할 때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
고레스 왕은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하며
그 재료를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 “마땅히” “도와 주”도록 지시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오로지 자기(자국) 중심적이기만 한 세상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만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은 하나님께 대한 거부를 응징하는 탈출과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이루어지는 귀환으로 구별된다.
아무래도 전자보다 후자가 더 완성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하나님을 거부했다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발전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처음보다 다음의 경우에 하나님의 뜻이 완성된 것으로 드러나는 예가 많다.
첫 아담의 실패와 둘째 아담(예수 그리스도)의 성공,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첫 창조와 새 하늘과 새 땅의 재창조…
그러면 출애굽과 바벨론 귀환이 바로 왕의 거부와 고레스 왕의 순종으로 대별되는 것이,
예수께서 처음 오셨을 때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과
다시 오실 때는 온 세상이 두려워하며 주의 강림 앞에 부복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아,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세상의 왕들이 역사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는 자는 복되고
거역하는 자는 그 풍성함에 이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