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0:9-44,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에스라는 유다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부름 받은 학자요 제사장이다.
그는 백성들을 성전 재건 뒤에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이방인과의 통혼이 몇 년 동안 공공연히, 그러나 지도자 에스라는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에스라는 유다의 전적인 위기와 모든 사역의 실패를 절감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었고,
더 나아가서 모든 백성이 에스라의 말에 따라 다 모였다.

에스라는 이 문제로 계속 회개하며 기도해온 결과를 백성들에게 알린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
이 조처는 사실 스가냐―그는 이방인과 통혼한 자의 명단에 들지 않는다―가
에스라에게 제의한 내용이었다.
그는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스가냐는 이방 여인과 자녀까지 “다 내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치는 에스라의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에스라도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는 것이 “그(=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증했다.

죄를 지은 공동체가 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회개다.
회개를 대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로 이해한다.
맞다.
회개는 무엇보다 기도로 하는 것이다. 어떤 행위보다 하나님께 진솔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든지 말로만 하는 편리한 술책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이 경우에 회개는 “자복”과 더불어 분명히 죄를 끊는 행위가 포함된다.
마치 도둑질을 한 자가 기도로만 잘못했다고 하나님께(또는 물건의 주인에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회개가 아니다.
그는 그 물건을 돌려줘야 하며 사실은 그 이상의 추가적인 배상도 해야 한다.
본문의 경우에 유다가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인가?
죄를 지었다고 자복하는 것뿐 아니라 죄로 인해 빚어진 상황을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
즉 회복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다.
이방 여인과 그 소생은 유다에서 떠나야 한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혹은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결혼의 원리에 부응하는지 의문이 든다.
신명기 7장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곳의 7 부족과 통혼하지 말 것을 명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벌어질 경우 과연 이미 맺어진 가족관계를 깨뜨리라는 언급은 없다.
그러면 에스라의 경우는 특수한 조처인가, 일반화될 수 있는 율법인가?
즉 범죄의 대가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된 뒤에 다시 거룩한 백성으로 출발하는 사명을 받고도
다시 음행의 죄를 집단적으로, 더구나 지도자들도 포함하여 지은 이 상황에서 적용될 특수한 조처인가,
아니면 이방인,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와의 모든 결혼에 적용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규정인가?
내가 살펴본 모든 자료는 전자의 설명이다.

이런 생각도 부차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거룩한 백성을 더럽힌 이방인과의 결혼은
마치 거룩한 혼인 관계 안에 제3의 인물을 끌어들여 간음함으로 그 거룩함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
그러한 경우 이 제3의 인물과의 관계는 불법이요 더러운 죄이므로 깨져야 한다.
그것은 더 이어질 수 없는 관계다.
이와 똑같이 본문의 경우도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상태인 것이 분명하므로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위해 이 관계는 계속될 수 없다.
그들은 내보내져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죄지은 상태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죄는 제거되고 씻겨야 한다.
아, 나의 회개는 얼마나 생각과 말만의 회개인가!

회중들은 에스라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며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한다.
그런데 우리가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생각하는 전염병, 전쟁, 패배, 재앙, 천재지변 등이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란 죄가 드러난 사실 그 자체,
그 드러난 죄의 사실로 겪는 괴로움, 그리고 잘못된 결합의 파탄, 이럴 것이다.
아, 하나님의 진노를 재앙과만 연결시켜 재앙이 없으면 마치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으시는,
합당한 상황인 것으로 합리화하기가 또한 얼마나 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