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9-15,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리이까)

이스라엘 국가의 역사는
노예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어 새 땅을 얻게 된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환하게 된 것도
그와 동일한 역사의 반복이다.

출애굽 때에 이미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대해,
거기 들어가서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곳은 죄로 물든 더러운 땅이므로 현지인들과 혼인을 금했고
그것은 무엇보다 우상숭배에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소유가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출애굽 때의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 해방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유다 백성을 70년 간 바벨론의 포로를 통해 정화하시고 다시 고향으로 보내셔서
이제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도 그리고 이번에 유다도 지키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첩으로 맞아들이며 역시 그들의 우상도 들여오게 했다.
심지어 솔로몬도 그러했다.
그리고 이제 에스라와 함께 유다에 돌아온 2차 귀환 백성들─80년 전의 1차 귀환보다 더 성숙했어야 할─도
이 명령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인 에스라는
이 말씀과 거듭되는 이스라엘(유다)의 범죄에 전율하며 탄식하고 회개한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리이까”
아, 이 고백은 사실 날마다 내게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탄식이지 않은가!
나의 죄는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신 내용들에 대한 것이다.
나는 신종 범죄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이미 성경에서 귀가 따갑도록 자주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렇게 자주 발생한 죄가 내게도 버젓이 반복된다.
나는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출애굽 이스라엘과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과 똑같은 사명을 받았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내 일상이 이렇지 못하면 나는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나는 “주 앞에서 ··· 감히 서지 못하”는 자다!

아, 내가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였으면,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다시” 회개하고 “다시 주의 계명을” 준행하는 것이다.
출애굽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바벨론 해방을 “다시” 베푸신 하나님,
제가 “다시” 짓는 죄에서 해방되어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떨며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