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1-8,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

고레스 왕 원년의 1차 귀환, 그리고 약 80년 뒤 아닥사스다 왕에 의한 2차 귀환.
놀랍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죄 짓고 그 값을 치르고 있던 유다에게 임했다.
패망한 민족이 스스로의 저항이나 적국의 멸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배자의 시혜를 통해 해방되고 고토로 귀환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지배자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의한 것이었다.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하나님의 역사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이 꼭두각시에 불과한 하나님의 독무대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거의 보이지 않고 -숨어 계시고-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으로 역사가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분명 역사의 주인이시지만
사람의 자율성, 즉 인격을 참으로 중요하게 다루시는 선하신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모든 역사에서 인간은 책임을 진다.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인간은 그 역사에서 어떻게 하느냐의 몫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판단하시고 저울에 다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에게
이 역사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무대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큰 은혜를 입고 과연 어떻게 살았는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 백성의 본분을 망각하고 범죄로 인해 벌을 받다가 놓임을 받은 이들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백성의 삶을 귀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동화되는 길로 갔다.
어제 말씀에서 110일 간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들을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했고
그 응답으로 마병과 병거의 호위 없이도 무사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실을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옛 모습으로 돌아갔다.

1차 귀환 백성에게는 성전 건축의 사명이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일을 마쳤다.
이번 2차 귀환자들은 그보다 심화된 사명을 가지고 돌아온 자들이다.
그들의 지도자 에스라는 제사장이요 학자로서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그리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은 에스라 한 사람의 사명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역은 배우는 자들을 전제한다.
즉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배우는 것이 사명이다.
이제 유다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명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뒤에
부활하신 주님이 그에게 목양의 사명을 맡기신 것과 같은 모습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의 용서와 사역에의 부르심이다.
즉 재신임이다.
그러나 2차 귀환자들은 이 사명의 감당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원주민과 통혼을 한 것이다.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하고 결속력이 있는 결합인 결혼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정욕과 우상숭배의 지름길로 변질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몰래 파놓으신 함정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축복이요 선물로 주셨지만
인간이 그것을 탐욕의 현장으로 왜곡시킨다.
지금 유다가 또 그렇게 하였다.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다.
새로운 공동체가 또 죄를 짓다니.
그리하여 에스라가 절망한다.
기가 막혔다.
탄식하고 애통하고 회개하는 것밖에 무엇이 있으랴.
아, 이들은 바벨론을 출발할 때 아하와 강가에서 사흘 간 금식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구하였던 자들이 아닌가!
그리하여 다시 기도다.
다시 회개요 다시 금식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같이 “모여” 기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다시 모였다.
그들이 아직 있었다.
아,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지난 80년 동안에 바벨론에 신실한 자들을 남기셨는데 이들이 실패하였지만
이들 가운데 또 신실한 소수가 남았다.
이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남아있었다.
아,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다.
절망 중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다.

그리하여 죄 가운데 소망이 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소망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떨게 한다.
말씀에 떨지 않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다.
떠는 자는 죄를 알았기 때문이요 그것이 슬프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죄를 대면하게 한다.
누구든지 죄를 대면하고 다 떠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떠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함께 겁 없이 죄 짓는 자들이 있고 함께 하나님 앞에 떠는 자들이 있다.
역사는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 주님, 떨게 하소서.
내 평생의 죄로 주의 말씀 앞에 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