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1-11, 우리가 배를 타고)

바울이 드디어 로마로 길을 떠났다.
이것은 신나는 해외여행이 아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세 차례 여정은 ‘전도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바울이 스스로 행로를 정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죄수로서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쇠사슬에 꽁꽁 묶여 심지어는 노를 젓는 노예노동까지 하며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죄수의 번호로서 최고의 악조건 속에 떠나는 여정은 아니었다.
바울은 꽤 호의적인 상황 속에서 이 항해를 하고 있다.

우선 이 호송단의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였다.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에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한 것이다.
백부장은 죄수인 바울에게 외출을 허락하였다.
죄수의 면회는 밖의 사람이 감옥에 와서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는 것인데,
바울은 마치 자유인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또한 아주 중요한 배려요 상황은 바울이 이 항해를 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죄수의 호송이란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의 이동이다.
그런데 여기에 바울과 동행하는 그의 동료들이 있다.
죄수로서 동료가 아니다.
지금까지 바울과 동역했던 형제들이 함께 승선한 것이다.
백부장이 항구에서의 외출을 허용하였다면
배 안에서 형제들과의 교제는 더욱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바울의 이 항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돌보시는 여정이었다.

설령 아무도 동행하지 못하며 죄수로서 최악의 취급을 받는 상황일지라도
바울에게는 무엇보다 이 항해를 사명감 있게 감당해야만 하는 목적이 있다.
그는 지금 로마로 가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지시하신 사명을 위해서였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황제의 법정에서 복음을 증언할 사명이 있다.
그러므로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비인간적이든 인간적이든 그것이 바울에게 영향을 줄 것은 없다.
그러함에도 바울은 동행과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사명을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만 아니라 동행하는 형제들에게도 당연히 힘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죄수임에도 호송 중에 어떻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일개 죄수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의견을 책임자에게 말할 수 있다.
호송을 책임지는 백부장과 항해의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에게 바울은 항해 자체에 대해 제안을 할 정도다.
그러한 일이 죄수에게 가능하겠는가?
이것은 백부장의 친절함 때문이며,
그러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때문에 가능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는 목격자요 증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은혜를 통해 바울의 로마 호송을 우리에게, 즉 모든 성도에게 생중계를 하신다.
바울이 혼자 항해해야 했어도 그의 기억을 통해 나중에 서신에서 그 과정이 보고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증언을 가능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얼마나 “우리”를 주시는지 참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