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19-32, 왕과 총독이 내려야 할 결단)

바울은 정식 법정은 아니지만 유대 지역의 최고 권위자인 두 사람,
즉 총독과 왕 앞에서 “변명”을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변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증언”이었다.
바울은 피의자로 잡혀서 재판에 회부된 중에도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다.

법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시민들의 소요로 시작해서 공회의 고소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천부장과 총독들과 왕족 앞에서 심문을 받고 있다.
정식 재판정에서든 개인적인 정치적 담화에서든 바울은 심문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바울의 이 심문과 변명은 본질적으로 심문관과 피의자를 바꾸어 놓았다.
총독과 왕은 자신들이 판결자요 바울이 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위해 스스로 변호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변명을 통해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즉 바울이 죄인으로서 자신의 죄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변명을 듣고 있는 두 권세자에게 ‘당신들은 죄인이고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죄인과 심문관이 바뀌었다.
총독과 왕이 죄인이요 바울이 심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바울은 시종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강조한다.
그것은 성경에 이미 예언된 말씀이다.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생명이신 하나님임을 입증하며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확증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다.

이제 두 권세자는 바울의 이 변명―사실은 심문―에 반응해야 한다.
자신이 심문관이요 재판관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결국 바울이 무죄라고 선언한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그러나 바울의 변명의 결론은 무엇인가?
나는 무죄하고 억울하고, 이게 아니다.
바울은 두 사람에게 촉구한다.
결단을 내리라고 재촉한다.
당신들 모두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즉 “나와 같이”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나와 같이” 회개하고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이 촉구―심문―에 자신의 답을 말해야 한다.
정답은 무엇인가?
‘내가 죄인이오. 내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겠소’
아그립바 왕이 한 단어를 인용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나를 권하였으니 내가 그렇게 되겠다’, 이렇게 답해야 한다.
모든 전도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소개이며, 그에게로 초대하는 것이며,
그의 사람―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아그립바는 바울의 변명의 핵심을 간파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심문받고 있음을 알면서도 심문관인 것처럼 대답했다.
자신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바울의 무죄를 말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왕의 권위를 드러낸 것이겠지만
그는 예수 앞에서 살 기회를, 즉 예수로부터 죄사함―무죄함―의 판결을 들을 기회를 이 순간 갖지 못했다.

복음의 증언이란 기독교의 옹호와 변명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무죄와 구원을 판결받게 하는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수고다.
내게 이 은혜를 주셔서 감사하옵고
나도 이제는 이 은혜를 다른 사람도 누리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