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5:13-27,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3차 전도여행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것은 고린도에서 주께서 환상 가운데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고 하셨던 상황과는 다르다.
주께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지시하시는 것은 많은 성과가 보장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은 그곳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는 예언대로 체포되어 구속되어 있다.

바울이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거의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에 비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2년이나 갇혀 그러한 활동을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왜 바울을 굳이 복음 전파가 제한된 상황으로 부르셨을까?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간청했던 여러 형제들의 말이 맞은 것 아닌가?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여전히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
앞의 도시들과 다른 점은
첫째,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공권력의 최고위층을 상대하게 된다.
그는 천부장, 두 총독, 그리고 왕족을 만난다.
그들은 단지 정치적, 외교적 관심으로 바울을 만나겠지만 그 자리에서 그들은 바울이 생생히 전하는 복음을 듣는다.
아마 이들은 저자거리에서 전하는 수많은 제자들의 복음을 직접 들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기를 원하시며,
그것은 공간적 땅끝만이 아니라 인종, 신분, 지위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특별히 천부장의 영내에서, 총독의 관저에서, 왕의 앞에서 사역할 기회를 만드신 것이다.
아그립바 왕이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라고 말했다.
복음은 총독과 왕에게도 증언된다.

둘째는 처음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지시하셨던 주께서 더욱 구체적으로 로마에 가서 증언할 것을 명하셨다.
바울의 목적지가 변동된 것이 아니라 분명해진 것이다.
바울은 예수를 증언하기 위해 로마로 갈 것이다.
물론 아시아와 그리스까지 다녔던 것처럼
바울이 그의 형제들과 로마로 가서 전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공권력의 보호 아래 로마의 심장부에 들어가게 하신다.
역시 신분과 지위를 초월한 하나님의 “땅끝” 사명을 위해서다.

즉 바울은 다른 도시에서 대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이들을 통해 바울은 로마까지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대사나 파견자로서가 아니라
죄수로서 로마로 이송된다.
즉 그는 고난 중에 ―암살의 위협도 있는― 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다양한 목적과 방법에 나는 얼마나 열려 있는가?
내가 바라는 하나님의 뜻의 수행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잘 되는 것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수가 되어야겠습니다,
수많은 관중들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도록 이 경기에서 골을 넣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세상에서 얼마나 도우시는지를 보이기 위해 1등을 해야겠습니다.
승진을 해야겠고, 상을 타야겠고, 부자가 되어야겠고, 건강해야겠습니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이 ‘주를 위해서’라고 말함으로써 나의 모든 형통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가?
나는 복음 증거의 과정으로 정말 고난까지 생각하는가?
바울은 그렇게 했다.
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