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11-22,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대제사장이시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서 명시된 “첫 언약”과 비교가 된다.
둘 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주신 언약이므로 근본적으로 같은 속성과 내용이 있다.
바로 “피흘림”이다.

첫 언약은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죄인들을 속죄했다.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
그 이유는 죄의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즉 대신 죽음을 통해서만 죄의 결과인 죽음이 치러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에서 짐승의 피로써 죄인들을 대속하셨다.

그러나 “새 언약”은 이와 같이 죄를 사하는 “피흘림”에서는 동일하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다.
짐승의 피냐 사람의 피냐가 중요하지 않다.
예수의 피는 의로운 피다.
무죄한 자의 피다.
죄인은 다른 죄인을 대속할 수 없다.
그는 자기 죄로 죽기 때문이다.
예수는 죄와 흠이 없는 분이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짐승들의 제물은 한시적이며 상징에 불과하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영원한 속죄”다!!!
무죄한 자가 죄인들을 위해 대신 피를 흘림으로 죄인들의 죄가 씻기고 깨끗해져서
죄의 결과인 죽음이 더 이상 무효하게 되었다.
그는 영원히 속죄된다.

그리고 첫 언약과 새 언약은 당연히 그 능력, 효능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것은 한시적인 속죄와 영원한 속죄,
즉 매번 드려야 하는 제사와 “단번에” 드린 제사의 차이다.
그뿐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아, 나는 예수를 믿고도, 즉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받고도
아직도 죄의 낙을 그리워하며 즐기고 자주 죄를 짓는다.
그럼에도 성령께서 나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것을 믿는다.
이제는 성령께서 내 안에서 사시므로 나를 계속 그리로 인도하신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새 언약의 제물이 되셨고 그리하여 나를 새 언약으로 이끄시는 중보자시다.
짐승의 피가 첫 언약에서 죄인들을 하나님께 한시적으로, 기껏해야 상징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중보자였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하나님께로 영원히 나아가게 한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는데
예수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심으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새 언약의 중보자”의 중보로 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은 자로
진실로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