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33-46,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일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에 일말의 연민도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도 그들은 예수를 조롱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것도 양이 모자랐던가!

그 조롱은 ‘잘됐다’, ‘속 시원하다’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는
‘한번 내려와 봐라. 너 자신부터 구원해 봐라’ 하고 그를 가지고 놀았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한 상황을 즐기고 있다.
내려와 보라니!
진짜 내려오면 어쩌려고?
그들은 예수를 매달고는 내려오지 못한다고 조롱하고 있다.

예수의 양옆에 달린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도 이와 똑같은 말을 했다.
그 역시 최대의 고통 속에 죽어갈 터인데 예수를 욕할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도대체 그 순간 그는 무슨 희열을 느끼겠다고 예수 놀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인가!

본문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의 십자가에 진지하게 반응했다.
그는 다른 편에 매달린 죄수였다.
그가 말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예수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 적힌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왕”에 상응하는 “나라”라는 단어를 말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즉 ‘당신이 왕으로서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수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십자가 아래의 군중들, 십자가 한 편의 죄수,
그들은 모두 예수가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조롱하고 있다.
‘사람들을 구원한다더니 네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잖아, 이 사기꾼아!’
그러나 다른 편의 죄수는
예수를 나라를 가지고 있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시인한다!
예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한 나라의 왕이다!

그는 지금 비웃고 있지 않다.
한 죄수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이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주장이요 조롱이다.
그러나 다른 편의 죄수는 예수를 그의 나라의 왕으로 고백한다.
그의 말에는 그(예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 다르다는 사실도 함축되어 있다.
그의 고백은 전적으로 옳다.

그리하여 그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나를 기억하소서”
그의 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는 곧 그의 신앙 고백이다.
그는 예수가 왕으로서 그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는 종교적 신성모독, 또는 대중을 속인 사기꾼이 아니다.
그는 세상과 전혀 다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다!
이런 고백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한 고백, “나를 기억하소서” 이 말은
결국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간구이며,
이것은 곧 예수가 구원자라는 뜻이다.
한 나라의 “왕”이신 예수는 결국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다!

아, 예수께서는 그 고통의 현장에서도 한 사람을 구원하신다.
그 죄수는 진짜 죄인이요, 그로써 예수께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도 십자가의 한 편에 매달린 죄수로서 예수께 고백하고 간구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아, 예수께서 정말로 왕으로서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셨고
그리고 아! 나를 기억하셨다!!!
감사하고 감사하도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