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19,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사람들은 나사로가 살아난 소문을 듣고 놀랐다.
그것은 인간의 최대 비극인 죽음에 대한 권능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죽었던 나사로가 예수에 의해 살아난 것이다.
그리하여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었다.

다음날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아직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입증하셨다.
그 광경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고 서로 말했다.
그것은 예수를 제거하려는 자신들의 뜻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분명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 이후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하시기 위함이었다.
충분히 일찍 가서, 즉 죽기 전에 그를 치유하실 수 있었음에도 예수는 그가 죽은 뒤에 오셔서 그를 살리셨다.
그리하여 아직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예고하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여서 나사로의 경우는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소생과 연장이었다.
그는 결국 나중에 죽을 것이다.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그의 몸은 이전과 그대로였다.
그는 다시 병에 걸릴 수 있고 다칠 수 있는 예전의 몸 그대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그와 전혀 달랐다.
부활은 다시는 썩지 않을, 즉 죽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상상도 못했다.
나사로의 소생에 놀라기만 했다.
앞으로 예수께 어떤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예수께서 충분히 예고하셨음에도 그러했다.

이제 사람들은 나사로의 소생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대면할 것이다.
지금 나사로로 인해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으며,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일이 벌어진다고 아우성인데,
예수께서 부활하시면 이 세상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리고 그 일은 과연 벌어지지 않았는가!
예수를 보지도 못했으며 유대인도 아닌 내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르게 되었으며,
세상의 모든 성도들이 다 그렇게 예수를 믿게 되지 않았는가!
아직도 세상에 많은 반대와 박해가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그 사역을 위해 내가 부름 받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