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1:1-11,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아, 예레미야 애가!
지난번 예레미야를 묵상할 때와 같이 긴장감이 몰려온다.
나는 다시 나와 이 세상의 죄의 현실에 참으로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슬프다 이 성이여!”
예루살렘이 멸망했다.
제사장과 왕과 주민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데 어찌 망하랴 했던 소망은 헛된 것이 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롭게 전했던 유다의 멸망이 사실이 되었다.
“전에는” 영광스러웠던 이 성이 “이제는” 수치와 황폐 속에 버려졌다.
“이제는” 슬픔밖에 없다.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픔은 유다가 당하는 환난 때문이며,
그것을 기뻐하는 대적들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다를 벌하실 때 남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천재지변을 통해―
대적에게 그 벌을 맡기셨다.
그것은 유다에게 더욱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거기에는 대적들의 조소와 조롱이 섞여 있다.
이른바 “그의(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대적의 손에 넘어졌”다.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의 손이었다.
그때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탄식은 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지자는 대적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유다를 벌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 대적들이 그로 인해 자고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유다보다 더 거룩한 백성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 큰 체” 한다.
원수들은 유다를 멸망시키는 것을 자신의 힘이 커서 그런 줄 안다.
신이 났다.
아, 의로운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의 손에 의해 하나님의 벌을 받다니!

그러나 예레미야가 분명히 알고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것이 슬픔과 탄식과 탄원보다 더 중요하다.
그는 이 모든 환난과 곤고의 원인을 안다.
그것은 유다의 “죄” 때문이다.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그것은 그의 범죄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어찌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이 죄를 지었는가?
그 근본 이유도 선지자는 정확히 안다.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아, 무릇 모든 범죄가 이 무지에서 시작된다.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지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죄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이 즐겁고 달콤함으로 그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나중”이 어떠할지 알고 있어도 죄의 유혹이 너무 커서 거기에 그냥 주저앉는다.
사실은 죄의 결과에 대해 아직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냥 대충 넘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누가 알랴 하고 안심한다.
하나님도 별로 신경쓰지 않으리라.
하나님이 또 한 번 봐주시겠지!
벌을 받으면 또 회개하고 살려달라고 하면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겠는가!
그것은 분명 신앙을 빙자한 하나님의 불신이며,
하나님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내가 하나님 위에 올라가는 행위다!

나의 죄의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는데도 나는 마이동풍으로 모든 말씀을 바람에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그 결과가 어떠할지 모르는 채 천연덕스럽게 또 죄를 짓는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고 또 범죄를 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러했다.
내가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답이 무엇인가?
예레미야의 기도가 내게 촉구한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예레미야는 참으로 낮아져서 ―정말 스스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탄식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다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이기도 하다.
유다 백성들 가운데 그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바벨론에 가서 대접받고 사는 길로 가지 않고
끝까지 유다에 남아 고난을 당한다.
그리고 죄인으로 스스로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회개한다.

이것이 중보기도이므로 이것은 나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나의 기도여야 한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이 기도를 배우는 예레미야 애가 묵상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