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1-15,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는 일이 일어났고,
“우리의 수”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 구조되었다.
멜리데라 하는 이 섬에서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선하신 보호를 받는다.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였고,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였으며
―모든 식량을 바다에 던지고 몸만 건진 276명에게 식량과 숙소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이 섬에서 이들은 “석 달”을 지냈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항해 처음부터 로마 백부장의 “친절”한 대우를 받더니,
이제는 섬의 원주민에게서도 “친절”하고 “특별한 동정”과 “후한 예”를 받았다.

유라굴로 광풍의 위기 이후로 배에 탄 모든 사람은 바울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었다.
바다에서만이 아니다.
이 섬에서도 그러하였는데,
여기서는 승선자들뿐 아니라 섬의 원주민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바울의 기도로 보블리오의 부친의 질병이 고쳐졌고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다.
마지막 “후한 예”는 그 보답이었다.
성도는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는 자다.
아, 나로 인해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맛보고 있는가?
나는 참 부끄럽다.

원주민들은 자연적인 차원에서 “공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독사에 물리자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라고 그들은 두려워했다.
그러나 바울에게 아무 이상이 없자
그들은 바울이 죽지 않은 것이 그 “공의”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하여 그들의 결론은 “그를 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을 전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말했을 것이다.

“석 달 후” 이 섬을 떠나 로마로 가는 길에 들르는 곳곳에서 바울은 “형제들”을 만난다.
이미 예수의 복음이 전해져 믿는 이가, 즉 교회가 있었고,
이제도 여전히 바울은 백부장의 호의로 상륙과 외출의 허가를 받아 형제들과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드디어 바울과 함께 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는데 거기에도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에 이르기 전에 이미 우리를 맞으러 왔다.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은 것은 지당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또한 초대교회 이래로 수많은 복음의 일꾼들이
이러한 기적과 후한 대접과 형제들의 환영 없이 외롭고 두려운 위협 아래 선교지에 도착했을 것이다.
거기에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다!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뿐 아니라 외롭고 두려운 마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지 않는가!
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문제인가?
그런 일은 결코 없다.
내가 나가지 않는 것이, 내가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