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27-44, 마침내 다 구조되니라)

14일이 지나도록 이들은 “바다에서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제야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울이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말한 바와 같았다.

이제 선주와 선장과 백부장은 바울이 된 듯하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바울이 지시하고 통솔하고 있다.
그러면 바울은 풍랑을 통해 선상 반란에 성공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것인가?
아니다.
바울은 여전히 죄수다.
그리고 그는 공손하다.
그가 할 말은 때마다 하고 있지만 그는 결코 무례하지 않다.
바울의 말은 모두 “구원”과 관계된다.
“이 사람들(사공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한 것이요”.
바울은 선장이나 백부장이 되기 위해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로지 사람들의 구출을 위해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드디어 선상 예배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사자”가 한 말을 전했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말은 마치 설교와 같다.
그리고 그는 떡을 먹기 전에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했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의 축사, 즉 기도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에도 참여한 것이다.
바울은 선주와 선장과 백부장을 넘어 이 배의 사도가 되었다.

누가는 이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라고 했다.
2주 이상 지속된 광풍 속에 실종되고 목숨을 잃기에는 꽤 많은 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폭풍으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이때 누가가 전체의 수를 언급하며 “우리의 수”라고 했다.
여기에 또 “우리”가 나온다.
“우리”라는 단어는 누가가 처음에 바울의 동역자들에게 썼던 말이다.
그다음에 바울이 배에 탄 모든 사람이 구출될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구조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도 이 전체 인원을 “우리의 수”라고 한다.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 “우리”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이 “우리”가 아니다.
한 배를 탄 사람 모두가 “우리”다.
이 동네의 지역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우리”다.
한 직장의 모든 사람이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모두 “우리”다.
광풍으로부터 구출되는 데에는 “우리” 안에 어떠한 구분도 차별도 없다.
자유인과 죄수도, 사공과 군인도, 예수의 제자들과 아직 안 믿는 자들도 모두 “우리”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이렇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전한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우리” “전부”를 구조하셨다.

이 정도로 내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우리”로 여기기를,
또한 광풍으로부터만 아니라 죄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구원 얻는 일에 “우리” 모두에게로 내 눈과 마음이 확대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