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19-28, 마음을 굳게 하여)

사도들의 치유기적을 보고 예수가 아니라 사도들을 신으로 추앙하던,
루스드라에서 ‘잘못 믿은 자’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제사 지내려던 “헛된 일”을 다행히 멈췄다.
그러나 복음을 ‘안 믿는’ 유대인들이 선동을 하자 그들은 결국 똑같이 박해자가 되었다.
그들은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이려는 일에 가담했다.
믿느냐, 안 믿느냐 사이에서 제3의 길은 없었다.

예수 앞에서 세상은 이렇게 둘로 나뉜다.
예수를 믿는 자와 예수를 믿지 않는 자.
그 사이는 없다.
처음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두 종류로 모아진다.

죽은 줄 알았던 바울 사도는 다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번에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 믿는 자들을 든든하게 세우는 일이었다.
즉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했다.
마음을 “굳게”했다는 말은 우리말로 두 가지 의미가 가능하다.
하나는 ‘굳세게’, ‘든든하게’라는 뜻이다.
즉 이미 믿은 자들이 사도들의 재교육을 통해 믿음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그 반대의 뜻은 이미 루스드라의 ‘잘못 믿은 자’들에게서 나타났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충동되어 마음이 굳어졌다.
바울의 행적을 보고 그를 신으로 높이고자 했던 자들이
유대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안 믿는 자’가 되고 박해자까지 자처한 것이다.

즉 믿는 자는 더욱 믿음이 강해지고 잘못 믿는 자, 안 믿는 자는 더욱 마음이 강퍅해졌다.
이렇게 해서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로 나뉜 두 부류의사람들은 한쪽은 더욱 강한 믿음을 갖고 다른 한쪽은 더욱 완악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을 거역한 뒤로 모두 마음이 굳어진 상태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화로 부드러워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그리하여 그 마음이 죄에 더욱 민감하여지고 성령을 더욱 사모하게 되고
자신이 죄인임을 더욱 고백하게 되고 영적인 성숙을 더욱 갈망한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부하여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마음이 전보다도 더욱 굳어져서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이를 싫어하여 그들을 공격하고 박해한다.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그 모습이 똑같다.
모든 사람이 예수 앞에서 넘어지든가 세워지든가, 둘 중 하나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은혜인가!
믿지 않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니 먼저 믿은 이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