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44-52, 그 다음 안식일에)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선지자들의 말을 풀어 예수를 전했을 때
첫 회중들은 그 내용에 놀라워했다.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와서 말씀을 전해주기를 부탁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다음 안식일에” 사도들은 그 회당에 다시 왔다.
그런데 사도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온 시민이 거의 다” 모였다.
그들이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서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사도들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말한 것이 청중들을 움직였고,
그들이 온 시내에 그 이야기를 퍼뜨렸다.
그리고 그들이 사도의 말에 반응한 것처럼 온 시민이 그들의 말에 반응했다.
“온 시민이 거의 다” 온 것이다.
이 시민들은 무엇을 들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사도들이 자신들을 돋보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이고,
첫 회중들이 또한 시민들에게 사도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처음부터 그들이 무엇을 들어야 할지 분명히 그 목표를 알았다.

모든 전도와 간증과 기적과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들은 이 점에서 그들의 사명을 정확히 수행했다.
오늘날은 분명 이 점에서 혼동이 있다.
많은 경우 설교자와 간증자와 기적을 행하는 자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그들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나도 사람이라” 하고 자신에 대한 집중을 막았던 것처럼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 나를 포함하여─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하고
조연으로, 또는 하찮은 배역으로 간주되는 것에 몹시 못마땅해한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 다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듣고자 모이게 된다.

안식일에서 “그 다음 안식일”까지 무슨 일이 있었다.
그 사이의 6일을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라고 지으셨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회중들은 그 일을 잘 했다.
그들은 6일 동안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 안식일”에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게 된 것이다.
이들은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7일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안식을 찾는 셈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일을 한 사람도 있다.
6일 동안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6일은 7일째의 안식을 저지하는 음모와 수작의 기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에 결코 안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얼마나 속이 부글부글 끓고 불안했을까!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그들은 안식하러 회당에 온 자들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모순적인 일이 벌어졌다.
6일의 노동과 7일째의 안식을 정확히 배운 유대인들은 6일 동안 작당을 하고 7일째 악행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로써 주께서 말씀하신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명령과 약속이 이루어진다.
이 차이가 한 주간, 안식일과 그 다음 안식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도 비일비재하다.
나는 6일 동안 열심히 노동하며 7일째 안식을 제대로 하는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영향을 끼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