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32-43, 이 사람을 힘입어)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안식일에 설교할 기회를 얻었다.
거기서 그는 우선 유대인 회중들이 잘 알고 있는 성경(구약)의 선지자들 이야기로 시작했다.
“선지자들의 말”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주신 구주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 그것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그러나 약속이라는 사실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소망을 주는 것만으로도 약속의 효능을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나 같다.
만일 가짜로 남발한 약속이라면 그것은 헛된 소망을 갖게 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약속의 중요성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약속인가가 더 중요하다.
거짓말을 잘 하는 자의 약속은 오히려 해롭다.
신실한 자의 약속은 힘 있는 소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그 어떤 사람의 신실함과 비교할 수 없는,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분이 하신 약속이라면?
그것은 약속 자체가 곧 성취요 사실이다.
하나님은 말씀이 곧 권능이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은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구원을 약속하시면 구원을 받고, 반면에 심판을 말씀하시면 심판이 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기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일 하나님의 약속에 위배되는 삶을 산다면 그 약속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약속(조건)대로 산다면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홀히 여겼다.
그것이 이루어지랴 하고 의심하고
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은 것을 달성하려 하였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하신 “선지자들의 말”을 그들이 얼마나 잘 믿지 않았는가의 증거다.

하나님의 약속 자체에 대한 진지함의 부족으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약속도 그들은 분간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 이 사람(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리고 이제 예수를 통해 그 약속을 이루셨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예수가 한 일을 보면 된다.
바울이 증언하는 것이 이것이다.
자신의 후손에서 구주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다윗은 죽어 땅에 묻혔지만,
그가 약속한 인물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예수의 부활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주다.

그리고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다!
이것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매주 모여 성경을 읽고 듣던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것을 전한다.

마찬가지다.
세상이 이것을 알고 있는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음전파는 계속되어야 한다.
주님의 부르심은 동일하다.
나는 이 오래된, 지금도 생생한 사명을 얼마나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나는 당시의 유대인 같은가, 제자들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