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16, 급한 발걸음에도)

바울의 발걸음이 무척 빨라지고 있다.
에베소(아시아)를 떠나 헬라에 이르러 석 달 동안 있기는 했지만
곧 방향을 돌려 다시 아시아로 돌아왔다.
마게도냐에서 아시아로 들어오는 첫 도시인 드로아에서 바울은 일주일을 머물렀다.

바울은 속도가 빨랐지만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고 빠뜨림 없이 다 감당하고 있다.
그의 할 일은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고 믿는 이를 장성한 자로 훈련시키고 다시 가서 더욱 든든하게 세우는 것,
그것이 그가 이렇게 여러 차례 이곳저곳을, 목숨을 걸고 다니는 이유다.
그의 모든 행로, 여정, 시간은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므로
그가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함이요,
한 곳에 삼 년을 머무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함이다.
주어진 시간에 관계없이 그는 어디서나 할 일을 한다.
드로아에서 이레를 머물며 그는 밤을 새며 말씀을 전했다.
아마도 낮에 하는 일로 피곤하였을 한 청년이 밤 중의 강론을 듣다가
창에서 ─드로아의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밤이 맟도록 말씀을 사모하였는지 알 수 있다─ 떨어져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아,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잔치에 사망 사건이 벌어지다니!
말씀을 전하던 바울이 회중을 진정시키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그 청년이 살아나고 바울은 아무 일이 없었던 듯이 다시 말씀을 계속 강론하였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바울은 여전히 할 일을 한다.
그가 생과 사를 가볍게 여겼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강론을 중단하기에 충분한 사건들 가운데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할 일을 끝까지 하고 있다.
설교 중에 사람이 죽었다!
그것은 설교자를 위축시키기에 얼마나 당연한 사고인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것은 기도자를 얼마나 위대하게 높이고 우쭐대게 하기에 충분한가!
그러나 바울은 위축되어 설교를 중단하지 않았고,
스스로 높아짐으로써 설교를 중단하지 않았다.

아, 나는 아주 작은 일에 자주 위축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진행되면 거의 당황하고 위축되고 짜증을 낸다.
아, 나는 아주 작은 성공에 자주 고양된다.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닌가!─ 우쭐하여 자고해진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의 최종목표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거기로 가기 위해 무척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복음 전파를, 교회 세우는 일을 대충 하지 않는다.
그는 급하게 속도를 내고 있지만 어디서나 그의 사명을 다한다.
어떠한 상황도 사명을 대충 감당해도 되는 빌미가 되지 않는다.
아, 이렇게 사도들과 제자들이 충성스럽게 헌신하여 오늘날까지 이른 복음이
나의 태만과 교만과 불성실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변질되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