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31, 선지자들의 말이 응하였다!)

안디옥의 두 사도 일행은 구브로를 횡단한 후 다시 뭍으로 항해했다.
섬이 아직 “땅끝”은 아니었다.
안디옥과 다소보다 구브로가 땅끝이었지만 구브로 다음에는 밤빌리아 지방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로 배를 타고 떠났다.

거기서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다.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까지 그들은 갔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으므로 그들은 그 일에 전념했다.

유대인은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일차적인 대상이다.
그들은 때로는 박해자이면서 때로는 유리한 발판이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흩어지게 된 것은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이었다.
바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예수 교도들을 잔멸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이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땅끝으로 전진하는 가운데
유대인의 회당은 복음 전파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면 유대인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거기는 아직 예수를 믿는 이가 없지만 사도들과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다.
아, 유대교의 회당은 이 하나님이 바로 예수를 구주로 보내신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회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예수를 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유대인들의 친절한 배려에 의해 기회가 마련된다.

순회 랍비들을 위해 설교의 기회가 마련된 예배,
그 열린 구조가 사도들에게 말씀을 나눌 기회로 되었다.
바울은 일어나 앞에 나가서 성경 말씀을 풀어 설명했다.
회당에 모인 자들은 모두 모세와 다윗을 안다.
바울은 이 선지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약속이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취되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을 아직 그들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는데 그 성취 여부를 모른다.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바로 예수가 그다!
여기부터는 그들이 모르는 내용이다.
예수에 대한 증언, 그것은 그를 제일 먼저 알린 세례 요한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아직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아, 바울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직접 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도 구약의 선지자들만 아는 자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뒤에 성령으로부터,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를 증언한 자들의 말이 무엇인지
자세히 듣고 배우고 이제는 그것이 바울의 증언이 되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예언하는 마지막 선지자다.
그다음부터는 오신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들이다.
사실은 이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점에서 선지자다.
요한도 선지자요, 지금 바울도 선지자다.
하나님은 모세와 다윗의 말씀을 이루셨듯이 요한과 바울의 말씀도 이루신다.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이것이 바울의 증언의 핵심이요 근거다.
만일 “선지자들의 말”이 없었다면 그것은 지어낸 이야기다.
아무리 기적이 많이 벌어지고 멋지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넘쳐도
그에 대한 “선지자들의 말”이 없었다면 그것은 희한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선지자들의 말”이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이루어졌어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바울의 증언과 증거는 바로 이것이다!

제자들은 그냥 땅끝을 누비며 대장정의 기록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누가 멀리 갔는가를 관록으로 자랑하는 것이라면
이들은 현대판 탐험가, 오지 여행가, 이색 취미생활자에 불과하다.
아니다.
이들에게 땅끝이 중요한 것은 바로 전해야 할 증언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선지자들의 말”이 응했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