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1-11,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 일행은 아덴에서 고린도로 이동했다.
두 도시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옛 그리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복음 전도의 차원에서는 매우 대조적이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동역자를 만난다.
로마에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그들은 바울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된 것 같지는 않다.
바울이 그들에게 가서 생업─천막 만드는 일─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했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봐서 바울이 아굴라 부부를 전도 대상으로 삼고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그들이 믿었기 때문에 바로 동역─생업뿐 아니라 전도에서도─을 했을 것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언제 예수를 믿었든
지금 고린도에서 이들이 바울과 복음의 동역자인 것은 틀림없다.
실라와 디모데도 마게도냐로부터 와서 합류하여 고린도는 아름다운 동역의 도시가 되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전도하고 가르쳤다.
역시 유대인들의 비방과 방해가 있어 바울이 그들을 떠나지만
그는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회당장도 믿었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
바울은 이 도시에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것은 그의 복음 사역이 잘 되었기 때문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주께서 여기에 계속 머무르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고린도에서는 아무도 안 믿을 것이지만 그래도 계속 전파하라, 이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셨더라도 제자는 순종하는 자다.
주님은 환상을 통해 바울을 격려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은 바울이 두려워했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바울이 계속 담대히 전도하도록 격려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두려움의 여부는 ─적어도 내게는─ 성과 여부에 좌우되기가 쉽다.
결과가 잘 되면 담대해지고 잘 안되면 위축되며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근거를 성과와 형통 여부에 두지 않으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이것이 두려워하지 않을 근거다.
형통 여부가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예수께서 함께 하셔도 고난을 받을 수 있으며, 주님 없이도 일이 잘 풀릴 수 있다.
이때 성도의 두려움은 후자에 있다.
주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움의 근거가 없다.
두려움은 주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 내가 주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바울에게 여기에 더 머물며 담대히 계속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신다.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단순히 ‘대박’의 성과를 예고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바울과, 고린도 도시와, 그 안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가 목이 좋은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뜻도 아니다.
사실은 어디에나 주님의 “내 백성이 많”다.
누가 믿을지 누구도 모른다.
주께 돌아오는 자는 모두 주의 백성이다.
주께서 ‘내 백성이다’라고 부르실 자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보든 사역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언제고 “환상”을 기다리며 “이 성중에는 내 백성이 많”다는 말씀을 귀로 듣기를 원해야 하는가?
물론 지금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시를 어느 때에 든지 하시지만,
오늘의 본문은 모든 사역지에 대해, 모든 사역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수많은 복음 전파자들이 생애의 모든 시간과 목숨을 걸고
한 곳에서, 여기저기서 복음을 전해왔고, 그 결과로 나도 믿게 된 것이다.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환상 중에 주께서 하신 말씀은 오늘날도 여기에서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