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16-34,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복음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충분히 나타내지 않으셨던 비밀이 완전히 드러난 진실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그리스로 다니면서 먼저 찾아갔던 곳은 유대인의 회당이었고
만났던 일차적인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제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 드러내었다.
그들은 아직 충분히 알고 있지 못했고 제자들은 그것을 완전히 알게 하는 일을 했다.
그것이 복음 전파의 사역이었다.

바울 일행이 더 나아가서 아덴(아테네)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당시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적 중심지요 이전부터 유럽의 출발점으로서 갖은 신화와 철학으로 온갖 신들을 만들어내고 따랐던 곳이다.
바울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했다.
아, 아덴은 아마도 오늘날 현대 사회와 똑같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도시뿐 아니라 시골까지도, 상가뿐 아니라 안방과 거실까지도 “우상이 가득한” 현실에 있지 않은가!
나는 바울과 같이 “마음에 격분”을 하고 있는가!
오히려 그것을 따르지 못해 좌절하는가?

바울은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을 했다.
그는 복음을 전한 것이고, 그것이 이들에게는 “새로운 가르침”으로 들렸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갈증보다는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호기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바울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자세히 증언할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하고자 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였다.
바울은 무엇을 알려주려는 것인가?
그것은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 관한 진실이다.
그 신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요 “천지의 주재”이며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나무와 돌과 쇠로 사람이 만들어 세운 말못하는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며 “사람이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도록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마음을 열기만 하면 하나님을 “믿을 만한 증거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우상을 만들어
그냥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진정한 갈망이 아니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그들에게 드러내려 한다.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전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유대인을 만날 일은 아마도 없다.
그러나 혹 하나님(신)을 알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당시의 유대인과 비슷할지 모른다.
또는 신을 그저 하나의 호기심어린 관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
심지어는 신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아덴 사람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바울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고 나아갔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성도가 만나는 세상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어느 때보다 세상이 더 악해지고 더 영악해지고 더 과학적이 되었다고,
이런 이유로 복음 전파의 어려움을 호소할 핑계의 여지가 사실은 없다.
세상은 언제나 복음에 적대적이다.

문제는 나다.
내가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같지 않은 것이 문제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같다.
내가 이 세상에 대해 격분하는 것이 적고,
이 세상의 무지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긍휼이 부족하고,
진리를 알게 하려는 사명감이 내게 너무 결핍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