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9-40, 최우선순위)

바울과 실라 일행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방향을 바꾸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거기에도 방해와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전에는 각 지역의 유대인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순전히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한 시비였다.
점치는 귀신 들린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되어 정상으로 되자
그를 통해 돈을 벌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 여인의 영혼과 인격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곧 구원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는 이 의로운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더라도 그 일을 하는 자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들은 이 부당한 일로 당황하거나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았다.
또는 역으로 전도할 기회를 얻기 위해 ‘쇼’를 한 것도 아니었다.
쇼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지언정 지속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며,
더구나 하나님의 일을 나타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사역자의 기도와 찬송은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즉 그들이 늘 해오던 하나님 섬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며 발을 든든히 채운 차꼬가 풀어졌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바울과 실라의 우선순위는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 요동이 간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다가 바울의 제지로 죽음을 모면했다.
바울과 실라는 이 기적을 탈옥의 신호로 읽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에 베드로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빨리 옥에서 나가라고 하셨을 것이다.
두 사역자는 이 기적이 탈옥의 신호가 아니라 감옥에서의 복음 전파의 신호임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감옥에서 이루어졌다.
간수의 첫 반응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그가 지진 사건을 통해 갑자기 ‘구원’을 질문하게 되었든,
이미 시내에서 벌어진 일과 감옥에서의 기도와 찬송을 통해 두 제자가 행하는 일을 보고 영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든
결국 한 사람이 구원 문제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곧 두 제자가 복음 전파를, 구원을 최우선순위로 삼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바울과 실라는 바로 이 질문을 간수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기회로 삼았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이 말씀대로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만일 두 제자가 부당한 투옥을 문제 삼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었다면
복음 전파의 기회가 지연되었거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바울과 실라에게 자기 권리는 최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 다음에 주장되어도 될 문제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최우선의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두 제자는 그 일에 충실하였다.
이것이 나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거듭 깨닫는 말씀은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하는 것과,
주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