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6-18, 하나님의 부르심)

안디옥 교회에서 출발한 두 사도의 선교 여정은 이번에는 각각 다른 길로 나아갔다.
일단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다툼에 의한 분리이기는 했지만
두 갈래의 선교로 확대된 것이다.
추측컨대 하나님께서는 두 노정이 겹치지 않고 복음 전파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는 결과가 되게 하셨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과 동행하면서 “우리”의 여정을 기록함으로
바나바 일행의 선교 사역은 더 보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는 것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이 있었다.
이렇게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가 있었고 바울 일행은 그에 따랐다.
이들의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 인정한다.

선교,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름으로써만 수행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예수께서 약속하시고 명령하신 말씀이다.
성령을 받고(“성령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되라!
복음 전도는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성령의 지시와 임재와 능력에 의해서만─ 하는 일이며,
그 범위와 목표는 “땅끝”이다.
이것은 예수의 모든 제자에게 해당되는 원칙이다.
복음 전도는 성도의 사명이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부르심에─ 의해서만 이 일을 감당한다.
즉 선교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그리고 계획대로 수행된다.

하나님은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바나바가 구브로를 통해 아시아로 가든지,
바울이 아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가든지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실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제자들의 길을 인도하시는가?
본문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이다.
그러면 성령(예수의 영)께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이런 말─하나님이 막으신다, 허락하지 않으신다, 또는 그 반대로 허락하신다─은 오늘날도 자주 하고 듣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이 매우 주관적인 느낌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대체로 상황의 전개에 따라, 즉 일이 풀리고 안 풀리는 여부에 따라,
사실은 상당히 많은 경우가 자신의 생각─감─에 따라 그렇게 단정한다.
사도들도 그러했을까?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예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였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맞이할 때,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날 때,
안디옥의 지도자들이 두 사도를 파송할 때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다.
또는 예루살렘 회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합당한 증거들을 통해 공동체가 결정을 했다.
그렇다면 바울 일행의 선교 여정도 이러한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바나바를 아시아로, 바울을 마게도냐(유럽)로 나아가게 하신다.
그리하여 복음은 “땅끝까지” 이를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전체적이지 않고 대체로 자기중심적이며 주관적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민감하고 그 뜻을 정확히 알아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