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1:11-19, 재물의 한계, 곧 끝)

바벨론의 심판은 하나님의 보복이다.
그것은 바벨론이 한 일이 하나님께서 되갚으셔야 할 범죄였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무슨 죄를 졌는가?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무너뜨렸다.
사실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범죄에 가하시는 심판의 한 가지 내용이었다.
그러나 바벨론이 하나님의 의로운 도구로서 그 일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껏 조롱하며 자신이 하나님을 물리친 듯이 오만하게 성전을 파괴했다.
설령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유다에게 가하시는 심판이 성취된다 하여도
그들의 죄악은 간과되거나 상쇄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다.

모든 죄의 본질은 교만이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바벨론은 자신을 높일 수 있는 많은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지리적 장점, 군사력, 경제력, 우상,
모두 자기 자랑의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단언하신다.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이게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부르시는 호칭이다.
그들에게는 최고(最古)요, 최고(最高)인 문명을 낳은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이 있다.
거기서 인류 최초의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가장 먼저 배부른 국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그들의 재물에 “한계”가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의 “끝”이다.
재물이 없다고 끝인 것은 아니다.
재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기초적인 식생활만으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재물만을 의지했던 자에게는 재물의 한계가 곧 그의 끝이 된다.
즉 바벨론은 재물의 노예였다.
이것은 기가 막힌 역설이다.
재물이 많다고 자랑하는 자가 결국은 재물만을 의지하며
재물을 신으로 섬기는 노예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전부인 재물에 한계가 오자 그에게는 끝이 온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재물을 치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벨론의 끝이 될 것이다.

아, 이것은 예수 믿는 이가 재물을 어떻게 상대화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재물은 인간 세계에서 매우 중요하며 요긴하게 사용되지만,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전적인 의지가 될 수 없다.
그것에 연연하는 것은 재물보다 더 귀중한 것,
더 높은 것을 보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고집이다.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을 멀리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재물은 반드시 하나님과 더불어 두 주인이 되려 한다.
마침내는 하나님을 몰아내고 유일한 주인 행세를 한다.
그러므로 재물에 시험 들지 않도록
나를 위해 덜 쓰며 이웃을 위해 기꺼이 쓰는 것이 성도의 생활방식이다.
재물을 전부로 여기지 않는 자에게 재물의 한계는 결코 끝이 아니다.
아, 그런데 점점 재물이 전부인 듯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끝인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