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0:21-32, 하나님의 보복)

바벨론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보복이었다.
‘보복’이란 ‘앙갚음, 곧 남이 해를 준 대로 그에게 해를 끼는 것’이다.
바벨론은 어떤 불의를 행하거나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 살다가
그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라기보다는,
바벨론의 죄악이 하나님께 해를 끼쳤고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 앙갚음하시는 것이다.

바벨론이 하나님께 보복을 당할 일은 무엇인가?
바벨론은 “여호와와 싸웠”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다.
하나님의 보복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행한 것의 되갚음이라고 한다면
바벨론은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하나님께 교만한 것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나님과 싸우는 자는 참으로 정신없는 자다.
하나님과 한편이 되어 하나님의 대적에게 대항해야 할 것인데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다니.
하나님이 싸울 대상인가?
하나님이 나라인가, 사람인가?
그것은 그가 얼마나 교만한 것을 입증한다.
자신이 하나님과 싸울 만큼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하나님이 자신의 상대가 될 만큼 하나님을 낮추는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낮추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보복은
하나님께 직접 대항하고 교만했던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죄악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며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교만하게 구는 것이다.
살인하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만 범죄한 것인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인격체를 파괴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성을 더럽히는 것이며,
도둑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노동의 귀한 가치를 깨뜨리는 것이다.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에 대한 범죄다.
어떤 죄도 다 하나님께 대한 죄다.
죄의 기준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께 먼저 죄를 지은 것이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증거나, 상해나,
그 어떤 범죄도 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보복을 당한다.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줄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열방을 약탈하는 범죄를 한 것은
약탈당한 열방이 감히 자신에게 보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은 거의 맞다고 할 수 있다.
바벨론에게 망한 나라들이 바벨론을 망하게 할 만큼 다시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범죄는 곧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교만한 범죄이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복하신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사실인가!
나는 하나님께 대적한 일이 없다고 하고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며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물건을 소유하며 탐욕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행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보복을 당한다.
내가 죄를 지은 대상은 나보다 약한 약자일 것이며
나는 그들의 보복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사실은 내가 죄를 지은 대상이 만물의 창조주요
만군의 주이신 전능자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보복은 필연적이다.
아, 바벨론의 어리석음이 바로 나의 어리석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