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0:1-10, 첫 대강절, 심판과 구원을 기다리며)

유다가 멸망하고 심판을 받을 때
그로 인해 구원을 받는 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벨론이 유다의 멸망을 통해 구원을 받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바벨론의 멸망은 다르다.
그것은 곧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과 뭇 나라들의 구원을 의미한다.

애굽으로부터 시작된 열방(이방)의 심판 예언은 바벨론으로 마치는데
그 분량은 다른 곳과 비교될 수 없이 길다.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 심판의 종국이며 절정이다.
완성이다.
바벨론은 뭇 나라를 짓밟았고
이제 그가 멸망을 당하므로 그 나라들이 구원을 얻는다.
포로였던 이스라엘은 고국으로 돌아온다.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 쓰셨던 도구였다.
만일 바벨론이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종으로서 그 도구의 직분을 잘 감당했다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채
―기껏해야 유다를 비아냥 거리는 빌미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때 바벨론은 아주 교만하게 유다를 정복하고 괴롭혔다.
유다를 조롱하고 하나님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바벨론이 했던 것,
그대로 그들은 심판을 당한다.
함락, 수치, 황폐, 사는 자가 없음, 도망, 정복, 약탈.
이것이 바벨론이 뭇 나라에게 해왔던 일인데,
이제는 바벨론에 이 일들이 일어난다.
이와 정반대의 일이 바벨론에 침략을 당한 나라들에게 일어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의 심판이요,
은혜로우신 긍휼의 회복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조소한다.
강자는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약자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그러한 방자함이 심판을 받고
그러한 불신이 수치스럽게 여겨질 날이 온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 내 주먹을 믿어라’고 으스대는 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에 놀라 자빠지고,
‘왜 세상이 이 모양인가. 신은 왜 잠잠한가’ 하는 회의적인 불평들을 잠잠케 할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어느 편에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겸손한 강자인가,
강자 앞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믿는 담대한 약자인가?
아니, 나보다 약한 이에게 한 방자한 모든 일들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무엄한 강자인가,
사람이 두려워 양심을 팔고 오직 무탈과 무사함만을 추구하는 비겁한 약자인가?

오늘, 대강절이 시작하는 날,
나는 어떻게 성탄절을 준비할 것인가.
참으로 무엇보다 조용한, 잠잠한 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조용한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