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9:23-3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람과 게달, 하솔, 엘람에 대한 심판의 경고다.
이 모든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레미야서 전체에 아주 많이 반복되어 강조되는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이 본문에서도 계속된다.

―예레미야서가 총 1364절이고 그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155회 언급되는데
평균 8.8절에 한 번씩 이 말씀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오늘 본문은 17절의 내용에서 7회나 언급되니 2.4절에 한 번씩 반복되므로
이 말씀이 특별히 자주 나오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본문의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우선 짧은 분량에서 네 나라의 심판을 예언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심판이 특별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강조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네 지역 모두 바벨론에 의해 심판을 당한다.
그러면 그것은 바벨론의 강대함에 의한 국제적인 우열관계의 귀결인가?
인간사에서 늘 반복되는 전쟁 현상일 뿐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본문은 구체적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고 명시한다.
마치 세계사가 강대국에 의해서 주도되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다 간파하시고 드러내시는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고발이요 폭로요 공개다.
하나님은 어떤 나라가 어떤 계획을 세우든 다 아신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모략과 계책이 하나님의 명령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직접 명령하신다.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그러면 이 나라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내리신 명령이며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주관에 따라 모략을 세우고 계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반복된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말씀하시며,
네 나라의 왕들과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그 말씀들은 전달이 아니라 명령이다.
즉 그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들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고
이 선지자를 통해 유다와 열방에 들려질 것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레미야와 속닥이는 개인적인 담화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에 공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역사에서 반드시 일어나게 될 사실이다.

이런 식의 말을 누가 할 수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떠드는 모든 말은 자기들끼리만의 푸념이요, 욕이요, 바람이다.
그 말은 지극히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그 말 가운데 어떤 것도 역사를 움직이지 못한다.
세계가 듣고 ‘예, 알겠습니다’ 하고 수행할 말은 없다.
강대국의 정치가조차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말이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그 말을 순종해야 할 당위는 없다.
실제로 그 말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이 명령을 들은 자가 본인이 겸손하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도 반드시 그대로 시행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지의 능력으로 미리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정하셨고 그 일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그 말씀에 순종하든지 무지하든지 그 말씀은 이루어진다.

그러면 답은 분명하다.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판의 예고든, 회개의 명령이든, 의로운 행동의 요구든,
순종하는 것만이 답이다.
심판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심판이 시행되는 것과 함께 회복이 있다.
불순종하면 그 심판이 시행되는 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의 권능이다.
이 선하신 권능에 내가 순종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