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6:20-32, 같은 경로 다른 말로)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며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보았다.
예레미야가 구금 중에 있어도 하나님 말씀은 구금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다른 동역자들을 통해 기록되고 전달되며,
그것을 들은 자가 다른 이에게 전달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일이 오늘 본문에서 여호야김 왕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다.
미가야와 몇 사람이 기록된 말씀(두루마리)을 왕궁에 가지고 왔고,
여후디가 그것을 왕과 고관 앞에서 낭독했다.
여호야김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경로는 누구의 경우에나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을 전달하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왕과 고관들이 들었다.
즉 화자와 청자가 있었다.

만일 청자가 애초부터 듣기를 거부하면 하나님 말씀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오늘날은 대부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전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예 말을 붙이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과 고관들은 일단 그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 함께 모여 낭독되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귀로는 말씀을 들었지만 마음으로는 거부했다.
왕은 심지어 낭독되는 만큼의 두루마리 분량을 듣는 족족 칼로 도려내어 화로에 태워버렸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을 감행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도전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공격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자, 곧 자신이 신이 된 셈이다.

아마도 그가 그렇게 행할 때
그는 이 말씀의 진원지인 바룩과 예레미야를 이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도 이겼다고 여겼을 것이다.
아,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성도를 박해하며 하나님 믿는 것을 탄압하며
교회와 성경을 불태우는 일이 벌어진다.
그들은 과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그것을 다 보고 계심을 알지 못한다.
여호야김 왕도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도려내어 불에 태워버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하나님 말씀이 전달되는 경로는 같았지만
말로는 전혀 다르게 된다.
그가 어떻게 비참한 종말을 맞을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계획해 놓으신다.
그는 자신이 승자인 듯 우쭐댔지만
하나님의 심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여호야김 왕의 모습은 곧 유다의 진면목이다.
왕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하고, 왕이 당할 일을 고스란히 똑같이 당할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권능이다.
권능은 왕의 권력에 있지 않고 말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