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6:1-19, 말씀의 전달자들)

여호와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상은 새겨진 형상에 입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말을 못한다.
하나님은 뜻을 밝히시고 그것을 시행하신다.
이것이 진정한 말의 의미다.
그냥 아무 말이든지 음성으로 들리면 말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소통되고 실행될 때 의미 있고 능력 있는 말이 된다.
우상은 전혀 말을 못하며,
사람은 말은 하지만 의미 없고 더욱이 능력 없는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사실 말이 필요 없는 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묵상할 때 말씀하심으로 성도와 교제하신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거의 대부분 선지자를 통한 대언의 말씀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음성)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요,
진정한 의미의 믿음(신뢰)이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신의 음성 앞에 압도되는 의사소통보다
실제 인간의 말로 당신의 말씀이 들려지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신뢰)을 전제하는데,
특히 하나님이 보내신 대언자(선지자)를 신뢰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천둥 같은 소리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 도통(道通) 같은 주관적 체험보다
직접 귀로 들을 선지자의 음성으로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 분명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이지만,
단지 인간의 말로 폄하하거나 불신하거나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우를 범한다.
그러므로 대언자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인지를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잘 판단하고
그 말씀에 응답하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소통이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명령대로 “기록”할 것이다.
기록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도록(듣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투옥(연금) 중에 있으므로
바룩을 불러 그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다 말하고 그것을 바룩이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바룩은 성전에서 “백성의 귀에 낭독”했다.
그것을 미가야가 들었고,
그 들은 바를 왕궁의 서기관 방에 들어가 거기 있는 고관들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들이 미가야가 들은 원본, 즉 바룩이 낭독한 두루마리를 직접 듣기를 원했고
바룩이 초청되었다.
그리고 바룩이 그 기록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그것이 왕에게도 들려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바룩이 이 말씀을 기록하게 된 경위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말씀의 심각함에 놀랐고,
그들이 아는 바 왕―여호야김―이 꼭 들어야 하지만,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기록에 왕이 화를 낼 것이며, 예레미야와 바룩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다.
그리하여 기록을 넘기고 숨으라고 권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전해지는가?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뜻을 나타내신 것은 예레미야에게만이다.
그 다음은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바룩이 성전에 있는 백성들에게,
미가야가 왕궁의 고관들에게,
그리고 다시 바룩이 고관들에게 그 말씀을 전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내일 본문에서― 있다.

하나님 말씀의 이 전파경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들려지게 되는 과정과 똑같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전하신다.
여기에 말씀의 전파자들이 쓰임 받는다.
최초의 청자들, 그 말씀의 기록자들, 그것을 전하는 자들,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모든 말씀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모든 말씀이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효하도록
성령께서 각 사람의 입과 귀(마음)을 감동하신다.

(분량이 길어 1, 2로 나누어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