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9:7-22,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에돔은 모압과 암몬보다 이스라엘에 더 가까운 친족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을 공동 조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본문은 에돔이 어떤 형태의 벌을 받을 것인지는 자세히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왜 심판을 받는지는 모압만큼 충분히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교만함이 큰 문제였다.
에돔은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겼고
마음에 교만이 많은 자였다.

교만함이란 타자를 얕보고 자신은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정직한 판단이 아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과장을 하고 타자에 대해서는 축소하며 왜곡한다.
그것은 진실과 멀다.
결국 속이는 행동이다.
교만은 타자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속임수다.
남을 나보다 못하다고 속이고,
나를 남보다 훌륭하다고 속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질책은 이것이다.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보다도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을 속이면 자신의 잘못도 알지 못한다.
죄를 지으면서 ‘나는 훌륭해. 저것들은 왜 그렇게 나만 못할까’라고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속이는 교만이다.
자신을 교활하게 속임으로
죄인인줄도 모르며 시인하지 않으며 회개도 할 줄 모른다.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이것은 교만함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결과이기도 하다.
교만한 자는 결국 그 교만함에 속는다.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즉 그는 교만에 속은 것이다.
자신이 꽤나 굉장한 자인 줄로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는 속은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심판과 결코 연결시키지 않는다.
심판은 나같이 훌륭한 자가 아니라
형편 없이 나쁘고 모자란 남들에게나 어울린다.
그런데 실상은 그의 교만함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심판과 무관한 줄 알았다가 심판을 당하는 것이며,
교만함에 속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속이는 모든 것은 곧 교만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정직을 대면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정직해야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할 것인데,
교만은 정직함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교만한 자는 그 방해를 결코 스스로 제거할 수 없다.
교만함에 취해서 자신의 숭고함에 즐거운데 어찌 그것을 스스로 중단하겠는가.
교만함에 취하면 그 교만함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만 제거된다.
그때야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정직함에 대면할 것인데,
이미 늦었다.
교만은 모든 회개의 기회를 잃게 하고
하나님의 긍휼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멸망이다!

이것을 보고도 내가 교만하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