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3;1-13, 다시 들려야 할 소리)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것은
우선은 그의 적대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옳고 예레미야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로 보일 것이다.
아마도 예레미야 자신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예레미야가 하는 말이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면
그를 이렇게 투옥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예레미야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다시 전해주신다.
‘나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에게는 아직 눈으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진다.
유다의 멸망도, 그리고 그것보다도 유다의 귀환과 회복도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그냥 이루시지 않는다.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조금도 사람에 의하지 않고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요구하시며,
그것의 응답으로 행하시려 한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일하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그의 자녀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도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마땅히 드려져야 한다.
아, 오늘날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의 성도들이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하는가!
얼마나 더 부르짖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유다가 예상하지 못한 대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또한 그들이 역시 예상하지 못한 대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셨음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듣지 않고 무지한가!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일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무엇인가?
유다의 모든 악행을 노여워하고 분노하여 그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에 손대지 못하는 무능하고 일하지 않는 분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신다.
치료하고 고치신다.
하나님은 벌만 줄줄 아는 분이 아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시며 다시 일어나게 하신다.
그 회복은 완전하다.
한 개인의 내적 평안만이 아니다.
성읍이, 나라가 완전히 회복된다.
그들의 사회생활이 경제가 사법이 가정이 생태계가 다 회복된다.
그 회복은 “소리”로 들린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의 내용은 무엇인가?
무슨 뜻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함성인가?
아니다.
“소리” 자체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 내용은 이렇다.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달리 말하면,
회복의 여부는 이 “소리”의 여부로 알 수도 있다.
이 “소리”가 들리는 곳이 회복된 곳이다.
죄악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성읍에 들어오고도 침묵하며 소리 낼 줄 모르다면
회복이 의심스럽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음이 확실하며
하나님과 늘 말씀의 교제를 나눔이 분명하다.
그러면 나에게서 나는 소리는 무엇인가?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인가?
얼마나 감사하는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의 소리의 내용인가?
내 입에서, 내 몸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가 무엇인가?
이 “소리”가 짜증, 불평, 판단, 탐욕의 소리를 이기고 있는가?
감사와 찬양이 오늘 하루 나의 “소리”가 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