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1-16, 말씀대로 이루어진 뒤)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왕이 끌려가 극한의 수모를 당했으며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대로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이 사실을 바벨론의 사령과 느부사라단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겠지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시인했다.
그는 조사를 통해 예레미야의 사역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한다면
예레미야가 말한 것이 다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도 놀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방의 사령관도 이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시인한다.

예레미야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바벨론으로 가든지 유다에 남든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바벨론의 사령관은 예레미야에게 자유를 주었다.
2절에서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고 하였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바벨론으로 가지 않고 유다에 남기로 하고
남은 백성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일 것이다.

유다 백성 모두가 바벨론에 끌려간 것은 아니었다.
유다에 남은 자들도 많았고 이들을 위해 총독도 임명되었다.
예레미야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가 유다에 계속 남게 하신다.
아마도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이 대개 지도층의 인물이므로
신앙적 지도자가 더 필요한 곳은 유다일 것이다.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본문의 아주 중요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잠잠하다.
총독 그달랴가 잘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예레미야가 이미 말했던 대로 행하고 있다.
남은 유다 백성들에게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고 권한다.
그것은 정치적인 굴종이나 기회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전했던 것은
유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순종하는 의미에서다.
순종만이 살길이었다.
바벨론 왕에게 하는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