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2:1-9, 여러 민족이 서로 말하기를)

모든 사람, 모든 나라들이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랄 것이나
최종 승자는 하나밖에 안 될 것이므로 거의 대부분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또 다른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승자로서보다도 정당한 자로 평가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무고한 희생자는 역사적으로 정당하다.
그는 승자로서 권리는 누리지 못해도
역사가 그의 편이 되어 의로운 자로 기려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이기지 못한 자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할 것이다.
이기기를 바라지만 결코 이기지 못한다.
승패는 그들의 군사력이나 정치적 결속이나 경제적 빈부 차이에 달리지 않을 것이다.
유다의 패배는 그들의 죄악의 마땅한 결과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유다는 그동안의 모든 기회를 다 거부했고 이제 심판의 때가 임했다.

이러한 때에 인간은 마지막으로 바로 이 비장의 카드를 든다.
‘우리는 희생자다’
사람들은 승패 여부만 따질 것이지만 패자는 희생자라는 사실로 자신을 미화할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도 그러할 것을 아신 것 같다.
그리하여 마지막 그들의 의존까지도 아무 가망성이 없게 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위장된 미화도 허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직 진실을 드러나게 하신다.
진실은 무엇인가?
유다가 죄를 지어 망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무엇이라도 증거로 사용하실 것이다.
무엇이 증거인가?
유다의 죄의 현장에 있던 모든 것이 증거다.
그들이 드나들었던 예루살렘의 성문,
그것은 그 성안에서 벌어진 모든 포학과 차별과 압제와 탈취와 착취를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
마치 디스크니 유에스비니 하는 미세한 기억장치들이 엄청난 정보들을 품고 있듯이
성문의 기둥, 그 벽돌, 그 문설주, 그 무엇에든
성안팎에서 벌어진 모든 범죄의 사실들이 기록되고 기억된다.
마치 엑스레이와 같이 인간의 범죄만을 기록해내는 장치가 거기에 있다.
‘돌들이 증언할 것이다!’

유다는 몇백 년 몇천 년 뒤에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문의 유적을 보며 그 위용을 보고
승자로, 아니면 의로운 희생자로 기억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 문과 돌들이 그렇게 증언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은 그것들로 진실을 증언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민족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고 물으면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 세상은 다 아는 진실을 유다가 모른다!
유다는 세상이 ‘이는 그들이 의로운 자로 무고하게 희생된 거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고난을 받은 거야’라고 말하기를 바라겠지만
그런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답이다.
너 자신을 미화하지 말라.
외식하지 말라.
네 죄를 알고 회개하라.
그것이 언제나 살길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금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