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1-14, 하나님의 거절)

선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 간구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이 믿음은 진실인가, 단지 인간의 기대일 뿐인가?
진실이다.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께서 못 들으시거나 듣지 않으시는 기도는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사람이 귀로 듣듯이
하나님께서 기도의 소리를 다 들으시고 내용을 이해하신다는 뜻이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귀’에 들린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모든 말과 생각을 다 들으시고 아신다.

아마도 우리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뜻은 그 이상일 것이다.
즉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시는 것을 ‘기도를 들으신다’로 이해한다.
더 분명한 표현으로 ‘기도를 응답하신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 뜻의 관철이 아니다.
우리가 명령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수행하시는 구도가 아니다.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내 뜻이 이것이라고 고지하고 이것을 행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응답’이란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대답이다.
그것은 나의 요구나 명령대로 하나님께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것이다.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니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바벨론이 떠나기를 간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렇게 기도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응답하셨다.
응답의 내용은 ‘거절’이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간구를 거절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기도에 그렇게 응답하셨다.

그것은 사실 이미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해주셨던 내용이다.
그런데도 못 알아듣고 시드기야가 기도한 것이며 하나님이 다시 한번 응답하신 것이다.
즉 시드기야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을 관철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시드기야는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은 다시금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 나는 얼마나 내 소망과 의도와 계획을 관철하려고 안달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얼마나 내 뜻을 하나님께 주입하고 명령하는 기도를 하는가!
그것은 그저 나의 형통함 뿐이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거절로 응답하실 때,
그때 나는 신속하게 내 뜻을 포기하고 거기서 돌이켜야 한다.
내가 여전히 내 뜻을 고집하고 있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기도에 그냥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사실 그것도 이미 말씀해 주셨던 내용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마지막의 순간에도 기회와 가능성을 허락하신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앞에 있음을 알려주신다.
그것은 곧 순종과 불순종이요, 회개와 회개하지 않음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죄짓고 끝내 돌아오지 않는 유다를 벌을 주셔서
정신 차리게 하시고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이 뜻에 순종하는 것은 회개하고 벌을 달게 받는 것이다.
그러면 살려주신다.
불순종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것,
내 뜻을 이뤄주시지 않는 것을 원망하는 것,
끝끝내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죽는다.

시드기야의 기도는 ‘바벨론의 공격을 막아주세요’였다.
그것의 본질적 의미는 ‘살려주세요’다.
하나님의 응답은 바벨론에게 당하라는 것이다.
그 벌을 달게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그렇게 함으로써 유다를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실 시드기야의 기도(‘살려주세요’)대로 이뤄주시는 셈이다.
그런데도 못 알아듣는 게 인간이다.
모든 기도를 ‘살려주세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의 응답은 사실 ‘살려줄 게’다.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그것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