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16,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

로마서의 마지막 장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바울의 동역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이다.
바울은 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말한다.
그러나 그 범위는 여기에 이름이 적힌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울은 결국 “모든 성도”로까지 범위를 넓힌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도들끼리의 관계에 대한 교훈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강조되었다.
교회 공동체의 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많은 지체”다.
거기에는 우열이 없으며 위아래가 없다.
모두 하나님을 위한다.
모두 서로 존중되어야(존중해야) 한다.

16장의 말씀도 이 원칙의 연장이다.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
이 말씀은 겐그레아 교회의 “자매 뵈뵈”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도가 서로 “합당한 예절로” 대해야 한다.
그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나열하면 영접, 문안, 도움, 감사, 존중, 입맞춤이다.
이 중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문안”이다.
문안은 오늘날 가장 상투적인, 형식적인 행동일 것이다.
안녕한지를 묻는 것, 만날 때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
그러나 “문안”은 성경의 인사말인 평화(샬롬)를 비는 것이며,
그가 정말로 어떻게 지내는지를 깊이 관심 갖는 것이다.
왜 문안하는가?
평안한지를 묻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으로 주님의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으로 염려하며 평안을 위해 뭐든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포함한다.
만일 그가 경제문제로 평안하지 못하면 먹을 것을 나눌 것이며,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안수하여 기도하고 병원에 같이 가고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처럼 하는 것이다.
문안은 말로 그치지 않고 마음과 행동이 다 함축된다.
문안에는 영접, 도움, 감사, 존중, 입맞춤이 다 포함된다.

이런 문안을 나는 하고 있는가?
내게는 이렇게 문안을 나눌 성도가 몇이나 있는가?
내게 문안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는 대답을 잘 하는가?
그리고 문안 나누는 것에 얼마나 마음과 행동이 다 동반되는가?
나는 무엇보다 이들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문안은 서로 묻는 사람 사이의 관계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아뢸 때 진정한 문안이라 할 수 있다.
기도 없이 하는 문안이란 아무리 잘 해도 내가 베푸는 나의 선행으로 그친다.
그러나 기도는 그의 평안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요,
나의 제한된 능력을 넘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 나타나는 현장이다.
아, 나의 기도가 달라져야 한다.
나의 기도에 더 많은 형제의 이름이 등장해야 한다.
나의 마음에 더 깊은 “사람 사랑”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