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26-35, 하나님의 노여움)

예레미야의 기도는 “슬프도소이다”로 시작하는 탄식의 기도였다.
그것은 유다의 죄에 대한 사무치는 슬픔의 고백이었다.
그 패역한 죄악의 결과가 바로 유다의 멸망이다.
예루살렘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졌다.
그것은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이다.
예레미야는 그것이 억울하다고 따지지 않는다.
그것은 유다가 지은 죄의 공의로운 귀결이다.

그렇지만 예레미야가 의아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촌 하나멜의 기업을 무르게 하심으로써
유다의 일상생활이 정상으로 회복될 것을 보여주셨는데,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된 것이다.
물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고
그 다음에 구원의 회복이 있는 줄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유다를 진실로 사랑하는 선지자로서,
나중에 회복될 것이라 해도 백성들이 지금 엄청난 고초를 당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두렵고 슬픈 것이다.

예레미야의 탄식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바로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로 시작한다.
‘그래,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내가 바벨론의 공격을 막고 예루살렘이 함락당하지 않고
유다 백성이 고초를 당하지 않게 할 수 없겠느냐.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선하신 권능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은 유다의 위기모면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러므로 ···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이다.
‘그러나’가 아니라, “그러므로”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전능하시지만(그러나)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능하시므로(그러므로) 유다를 심판하신다.’
아,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는 뜻은
‘내가 내 백성이요 내 자녀인 너희도 죄를 지으면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아, 누가 죄 앞에 태평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은혜를 받았다고, 주의 일을 했다고,
그러한 자격과 자랑으로,
죄를 짓고도 아무 일이 없을 줄로 아는가?
바로 이러한 방자한 착각을 유다 백성이 했었다.

하나님의 대답은 참으로 참담한 말씀이다.
‘그래, 나의 전능함으로 너희 죄를 심판하는데,
그것은 바로 너희가 우습게 알았던 이방 나라를 통해 망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조목조목 나열하시는 유다의 죄는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였고, 하나님에게 “노여움과 분”을 일으켰다!
그들의 죄는 어디까지 나아갔는가?
하나님이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 “교훈을 듣지 아니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죄를 지은 걸로 부족해서
하나님께서 돌이키시려는 훈계마저도 거부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마저 우습게 알았다.

하나님의 대답은 지금까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 백성에게 들려주셨던 말씀의 반복이다.
‘너희는 심판을 받는다!
나의 전능함이 그것으로 나타난다!’
예레미야가 이 사실을 몰랐겠는가?
그는 알고도 알았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탄식하며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탄원한 것이다.
아, 선지자의 마음이 내게도 있어야 한다.
나는 나의 죄로 얼마나 탄식하는가?
나는 우리 민족의 죄로 얼마나 탄식하는가?
나의 탄식은 기껏해야 일이 형통하게 되지 않을 때뿐이지 않은가?
아, 하나님.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과 격노를 제가 정말 제대로 알며,
선지자의 슬픔과 탄식이 진실로 저의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