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1:10-22, 돌이키시고, 돌아오고)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강조하여 약속하신 “다시”의 가장 현실적인 의미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사건과 관련된다.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28:4),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4)
하나님의 “다시”는 멋진 상징이나 신비한 은유가 아니다.
실제 사건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정신적인 위로와 소망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사건을 약속하며 예고하시는 것이다.
이 “다시”는 실제 역사에서,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그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하나님이 정하신 포로의 기간은 70년이었으므로,
만일 10대 소년이었던 자가 바벨론에 끌려갔다면
그는 80대에 다시 유다로 돌아온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포로들이 성전을 다시 지었을 때에,
바벨론에 끌려가기 전 옛 성전을 보았던 “나이 많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대성통곡”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을 에스라는 역사적으로 생생히 기록한다.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에스라 3:11~12)

그런데 이 ‘다시 돌아옴’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면서,
또한 유다가 할 일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거듭 약속하셨다.
그것은 선언이요 선포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포고하셨으므로 그것은 주권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유다가 순종하여 이뤄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다시 돌아오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이면서 명령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요 섭리이면서 유다의 사명이요 순종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의 신비다.
이 명령에 순종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는 순종의 고백에 이 신비가 들어있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이것은 ‘네, 돌아오겠습니다’보다 더 믿음 없는 무책임한 말인가?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고백 밖에 할 수 없다.
나는 나의 패역함을 알며,
내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무능함을 아주 잘 안다.
내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돌이키심으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나는 간구한다.
‘나를 돌이키시소서,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다시 고백한다.
‘나를 돌이키셨으므로 내가 돌아왔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것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감사하고 그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나는 없다.
하나님만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