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1:1-9, 다시 너를 세우리니)

예레미야서에는 “다시”라는 단어가 무척 많이 나온다.
전체 60구절에서 63회 언급되고,
그 가운데 31장에서만 9회 반복된다.
“다시”는 성경 전체에서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다 사용될 수 있다.
‘다시’ 죄를 짓는다고 할 때는 부정적이며,
‘다시’ 회복되는 경우에는 긍정적이다.
특히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심판을 선언하는 이 책에서는
‘다시’가 ‘돌아오다’와 긴밀한 짝을 이룬다.
예레미야서는 ‘다시금 죄를 지어왔던’ 유다 백성이 이방으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의 책이다.

본문에서 “다시”는 이렇게 강조된다.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다시 소고를 들고 ··· 춤추며 나오리니”,
“다시 ···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사실은 거의 모든 말씀에 “다시”를 넣을 수 있다.
‘다시 내 백성이 되리라’, ‘다시 안식을 얻게’, ‘다시 너를 사랑하기에’,
‘다시 일어나라’, ‘다시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다시 기뻐 외치라’,
‘다시 전파하며’, ‘다시 찬양하며’, ‘다시 구원하소서’,
‘다시 모으리라’, ‘다시 돌아오리라’.

“다시”는 전에 있었(했)던 것을 전제한다.
처음 있(하)는 일이 아니라 전에 있었(했)던 일이 재현된다.
즉 전에 그러했었고, 그것이 계속되지 못했다가 다시금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의 핵심이요, 성경 전체의 개관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창조되었고 교제를 나눴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 그 특권과 은혜를 상실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긍휼히 여기셔서 회개할 기회를 얻고 구원을 받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시”의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나는 영영 형벌에서 다시는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다시”가 나를 살렸다.
아, 나는 “다시” 죄를 짓지 말고,
“다시” 하나님을 노엽게, 안타깝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다시”의 은혜는 억지로 선심 쓰는 극히 일부분의 맛보기가 아니다.
장사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들에게 조금 먹어보라고,
조금 써보라고 내놓는 견본이 아니다.
하나님이 “다시” 하실 때
그것은 글자 그대로 이전 것의 전부를 다시 하시는(주시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전에 받지 못했던 것을 누리게 하신다.
약속된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에덴동산과 비교되지 않는 온전한 곳 아닌가!

본문에서 “다시”는 특별한 사건에 적용되는 말씀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뒤에 백성들이 유다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성도에게 언제나 반복되는 말씀이요
은혜요 특권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죄를 지어 실패하지만
내일 다시 하나님의 회복을 맛본다.
나는 날마다 “다시” 죄에 대해 죽고 “다시” 의에 대해 산다.
나는 날마다 다시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
나는 매일 다시 거듭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세우시기 때문이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내가 탐심과, 판단과, 악의로 다시 무너졌지만,
주께서 나를 다시 세우신다는 말씀으로 힘을 얻어 나는 다시 일어선다.
이제 다시 겸손과 이해와 선의로 하루를 다시 산다.
나는 다시 감사하며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