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0:1-11, 슬픈 그 날 후의 구원)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 또다시 들린다.
어마어마한 탄식의 소리다.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아, 이것은 예레미야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탄식이다.
“그와 같은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유례가 없는 슬픔의 날!
“야곱의 환난의 때”

도대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환난이 닥친 날인가?
하나님은 그것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로 비유하신다.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그냥 죽고 끝나기를 바랄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죽음은 오히려 고통을 끝낸다.
그러나 이 환난의 날은 고통이, 아니 고통만 계속되는 날이다.
그것도 최고의, 극한의 고통이!
세상에 없던 고통, 남자가 해산하는 고통을!
이것은 그냥 해산이 아니다.
해산은 여성이 대대로 해왔던 고통이다.
그러나 이 환난의 날의 고통은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고통이다.

그러한 고통이 왜 임하는지는 지금까지 계속 알려졌다.
바로 유다의 죄악 때문이다.
조상의 죄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유다의 왕으로부터 지도자들로부터 백성들 모두에 이르기까지 죄악이 사무쳤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거듭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듣지 않은 죄가 더 추가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에 들이닥치고
성을 에워싸고 굶겨 죽이는 순간이 왔는데도
오히려 없던 ‘믿음’이 강하여져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키실 거라고 태평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개하라고 주신 그 기회에
회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죄가 또 추가된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 다시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다.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이 탄식 뒤에 다른 말씀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아, 환난의 날 뒤에 “그러나”가 있다.
그것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내진다는 말씀이다.
아니, 선언이다.
약속이다.

슬픈 그 날,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는 그 날이 끝날 것이다.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라고 유다에게 선포하셨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신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멍에를 꺾으신다!
그래야 멍에는 꺾인다!
하나님이 메우신 멍에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멍에를 메우시고 꺾으신다.
이제는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않는다.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이것은 ‘출애굽’의 역사다.
이스라엘이 400년이 넘도록 이방인 밑에서 그들의 멍에를 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퍼부으시고 홍해를 가르고 애굽을 나왔던 그 역사가 재현된다.
그러나 이방에서 구출되고, 이방을 탈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아, 유다를 멸망시키고 사로잡아갔던 바벨론도, 메대도 바사도 다 망한다.
그들 밑에 포로로 있었던 이스라엘은 지금도 역사에 남아있다!

이날은 어떻게 오는가?
바벨론의 침공 없이, 바벨론에 의한 패망 없이, 바벨론에게 항복함이 없이,
바벨론으로 끌려감이 없이, 70년이나 포로생활을 함이 없이 오지 않는다.
아, 슬픈 그 날,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는 그 날이 오지 않고는
구원의 날이 오지 않는다.
무슨 뜻인가?
회개함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의미다.
유다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죄인의 구원은 반드시 회개를 통해서다.
그것이다.
바벨론의 멍에는,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이방인을 섬기는 것은
곧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냥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 아니다.
70년 동안 놀다가, 다른 짓 하다가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어제 말씀에서 이미 바벨론에 끌려간 스마야가 어떻게 거짓 선지자에 불과했는지 보았다.
그는 바벨론에 가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하지 않으면 바벨론에서도 허송세월을 보낸다.

하나님이 주신 이 슬픈 날,
남자가 해산하는 전무후무한 고통을 겪는 날은
오직 회개를 위한 날이다.
이날 뒤에야 구원의 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