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9:15-32, 예비된 복된 일을 보지 못하는 자)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회복시키신다고 줄곧 말해왔다.
바벨론을 피해 예루살렘에 숨어 남거나 애굽으로 도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거부하는 자요 불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살아날 기회 없이 완전히 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요 천사들인가?
아니다.
바벨론에 끌려갔어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떠나 마음대로 산다면
그들에게 구원과 회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음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헛된 경로를 통한 구원을 믿고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들은 이미 들려준 예언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끌려왔으며
70년이 지나면 다시 고토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소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일이 무조건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만일 바벨론에 끌려갔으면서도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과 똑같은 마음이라면
그들은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의심하고 그 외에 다른 선지가 없나 기웃거렸다.
그들의 그러한 불신과 불안감의 자세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의 귀에도 들렸다.
그것은 하나님께 끝까지 불순종하는 자들의 마음을 북돋울 것이다.
그들 가운데 스마야라는 자는 왜 예레미야를 체포하지 않느냐고 안달이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거부요 불순종이므로
예레미야가 나서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대답하신다.
‘하나님은 스마야를 선지자로 세우지 않으셨다.
그와 그의 자손은 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고 선포하신다.

바벨론 포로를 기꺼이 수용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된 일”을 행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도 끝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는 그 “복된 일”을 보지 못한다.
아, 이것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데 거함으로 복된 일을 얻게 될 자가 그것을 보지 못하다니!
아, 순종과 불순종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몸이 바벨론에 있다고 해서 순종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몸이 바벨론에 없다고 해서 불순종인 것도 아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에 순종할 것을 촉구했지만
그 자신은 강제적으로 애굽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한다.
어디 있느냐보다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가 중요하다.
복된 일은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결정된다.
순종함이 없이는 복된 일이 없다.
설령 몸이 바벨론에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