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9-22, 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다.
그는 하나님이 만민의 구원을 위해 선택하신 이스라엘(유다)이
거룩한 생활을 하기는커녕 더욱더 패역한 모습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말씀을 전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망하는 현장에서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슬픈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했고,
칭찬이 아니라 분노를 쏟아내며,
희망이 아니라 절망에 더 휩싸여야 했다.
아, 그것이 선지자의 고역이다.

그가 지금까지 힘든 말만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마음은 계속 쓰라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동족의 죄악을 지적하고 그로 인한 멸망을 예언하는 일을
어찌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겠는가.
예레미야는 동족의 죄악상과 하나님의 진노를 직접 보고 들으며
괴롭고 곤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고초를 겪고 있는 그가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라고 부르짖는다.
아, 도대체 이번에는 무엇을 보았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여호와 그 거룩한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 내용은 “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그냥 막연하게 두루뭉수리로 싸잡아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그 대상을 지적하신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 ···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신앙의 지도자들이다.
간음이란 파렴치한 범죄다.
그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요
육체의 쾌락에 탐닉함으로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결함─하나님께 대하여, 사람에게 대하여─을 더러움으로 변질시키는 범죄다.
그것을 종교 지도자들이 행했고,
그들은 분명히 은밀하게 그 짓을 하며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여전히 과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마음과 몸이 무엇을 밝히고 있는지 다 아신다.
세상은 실제로 모르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지만 ─자신도 그러하므로─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들은 경건을 위장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을 팔아먹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신 적이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자신을 높인다.
자신의 의와 권위를 강화한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예레미야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무너졌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현실을 직시하고 공황에 빠졌다.

아, 그런데 나도 이 말씀─“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을 듣고
예레미야의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남’의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사악”함에 떨며 몸 둘 바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