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3-31,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행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제자들의 “담대”함이다.
우리말 번역으로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 63회 나오는데 그 중 14회가 사도행전에서 쓰인다.
가히 사도행전은 “담대”함의 책이다.

오늘 본문에서만 세 번 이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 붙들려 가서 심문을 받는 중에 이들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에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놀랐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고하자 함께 기도하는데
그 간구 내용이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달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응답되었다.
그들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사도들과 제자들의 담대함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이다.
그것은 학식이 있는 자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조리 있고 논리적이며 반박할 수 없는 타당한 말을 이들이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회에서 누구도 이들에 대해 “비난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와 함께 담대함이란 위축되지 않고 거침없이 할 말을 하는 태도다.
사도들은 유대에서 최고의 종교적 권위를 누리고 있는 공회에서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다.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하면 화를 덜 입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그것을 위해 머리를 쓰고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할 말을,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했다.
위협이 있었고 금령이 내려졌지만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공회에서의 논박을 보면 누가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누가 궁색하게 끌려가고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된 일이 아니다.
이미 담대함을 ─지혜로움에서나 당당함에서나─ 공인 받은 사도들은 제자들과 함께 모여 바로 담대함을 위해 간구한다.
이들은 이미 담대했음에도 또 담대함을 위해 기도한다.
담대함이란 어떤 자격증이 아니다.
한번 따놓으면 평생토록 유효해지는 그런 면허증이 아니다.
사도들은 이미 공회 앞에서도 담대함을 입증했음에도 하나님께 담대함을 간구한다.
담대함이란 사람의 자격과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외성적 성격, 달변의 능력, 겁 없는 배포,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만 나타난다.
그들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달라고 간구했더니,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기도를 했다.
즉 담대함의 출처를 정확히 알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내재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심으로써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간구해야 한다.
지속적인 기도제목이어야 한다.
그 결과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
담대함이 사람의 배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다.
즉 이들의 간구는 곧 성령의 충만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담대함이 참 부럽고 나는 창피하다.
그들이 보고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셨는데 나는 담대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진리를 아는 데서 부족하며, 더욱이 위축되어 있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나에게 기도제목을 바르게 알려준다.
나는 담대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곧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오, 하나님 저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소서.
무엇보다 “성령이 충만”하게 하여 주소서.
내가 담대하지 못하나이다.
지혜롭지 못하고 겁이 많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