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를 믿는 제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당국이 긴장했다.
그들의 조처는 사도들의 첫 투옥이었다.
구금 이유는 그들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점이 핵심이었다.
예수는 그들이 죄인으로 몰아 사형에 처한 자다.
그런데 그가 살아났다면 그것은 사람에 의한 일일 수 없고
오직 신적 권능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므로 예수가 정당하고 그들이 부당하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설명은 일관되게 이에 대한 강조였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셨다!
이로써 예수가 죄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이 입증되었다.
예수는 하나님이므로 그의 이름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름으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가진 이가 없다.

하나님이신 예수를 죄인 취급했지만 그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며 결국 그의 이름으로 세상을 구원하신다.
그것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된 말씀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 특히 종교 당국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전이 되는 말인가!
만일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필사적으로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을 대적하고 몰아내야 했다.
그들이 사도들에게 걸 수 있는 시비는 사도들의 권위 문제였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것은 권위와 권세가 그들에게만 있는데 그것을 그들이 주지 않았음으로 사도들의 모든 행위는 권세가 없다, 이런 주장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만든 권위체제에서만 통용되는 인위적인 논리다.
그들의 권위는 당시의 종교체제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무관하였다.
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전해진 바로 그것을 이룸으로써 확실한 표징을 보여주고 있는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의 권위가 실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를 반대하느냐는 질문 앞에 있다.
만일 하나님의 권세와 이름으로 예수가 거부될 수 있다면 그들이 옳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와 이름이 예수를 높인다면 그들은 잘못으로 입증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병자의 치유와 사람들의 내적 변화와 무엇보다 죄의 용서와 구원을 행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행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언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예수의 이름만이 세상을 구원하는 이름이다.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이것을 내게 믿게 하셨으니 나는 얼마나 감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