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11-26, 모든 선지자가 가리켜 말한 이때)

사람들은 한때 예수를 왕으로 기대했다가 자신들의 꿈과 다르자 그를 내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
그리고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불과 사흘 뒤에 더 이상한 소문이 돌더니
그리고 50일쯤 지나서는 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활했다고 하는 예수는 더 보이지 않는데 그의 제자들에게 마치 예수가 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성령 강림이 그러했고, 이제는 성전 문 앞에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치는 일이 그러했다.
마치 예수가 있는 것과 똑같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것은 매번 베드로가 그 일들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으면 하루에 몇 천 명씩 그 모임에 가담하게 된다!
이번에도 베드로는 성전 문 앞에서 벌어진 기적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의 논지는 간단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알려주신 일들이라는 것이다.
이 걷지 못하는 걸인이 사도들의 한 마디에 일어나 걷게 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에 의한 것이고
그것은 곧 예수가 낫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는 데까지 낮아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 높이셨다.
그 모든 것, 즉 예수의 고난과 영화가 다 이미 예언된 것이다.
모세도 말했고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 미리 말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결론은 이것이다.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며 하나님의 큰일을 증언하는 것,
예수의 이름으로 장애인이 벌떡 일어나는 것, 아 무식한 어부가 이렇게 성경을 잘 알며 모든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것이요 예고하신 것이며 바로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을 미리 다 말씀하셨다.
그럼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이 전에(이미)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때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사실은 그것만이 문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여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고,
예수가 부활했다 해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믿는 자들이 어떤 권능으로 무슨 일을 행하는지도 알아보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세상이, 오늘날 세상이 이와 똑같았고 똑같다.
아, 나 같은 것이 하나님이 말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얼마나 신비한 일인가!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았고 그를 따라다녔으며 그가 하는 말을 듣고 행한 일을 실제로 보았음에도 결국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했던 그들을 보면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은혜인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 그들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그들에게 들려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요, 내가 지금 예수 믿는 자로서의 지당한 사명이다.
모든 선지자가 예수의 오실 것과, 다시 오실 것을 말씀했다.
그것을 듣고서야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러면 이제 나는 선지자의 입노릇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이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것이 되는 것, 그것이 선지자다.
하나님은 먼저 믿은 성도를 모두 선지자로 세우셨다.
새해의 첫 날들이 다 가기 전에 이 일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