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1-10, 성전 문 앞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제자들의 수에 들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먼 데 사람”까지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성령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즉각적인 성취였다.

그것은 단지 수의 확대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의 수적 세력을 증대시켜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수는 늘어날 것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관계의 확대다.
120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어난 제자들은 12명 때나, 120명 때나 똑같이
수천 명이 함께 모여 배우고 교제하고 기도하고 물질을 나눴다.
그들은 변화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이 공동체에 “모든 먼 데 사람”까지 들어오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리고 이 수와 관계의 확대는 은밀하게 밀교의 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모든 것은 투명했고 공개적이었다.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에, 집에 모였다.
벌써 수 천 명에 이른 수의 모임은 비밀집회일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다 알려져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어느 날 “제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
사실 그것은 그들의 일과였다.
바로 성전 문 앞에서 걷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을 만났을 때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치유했다.
그들은 그 걸인을 ‘잠깐 따라오라’ 하며 은밀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고치지 않았다.
혹시 못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나”라고 명령했는데 못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실패를 대비하여 사람 없는 곳으로 그를 끌고 가지 않았다.
만일 못 고치더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창피할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렇게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당히 “성전에 올라”갔다.
제구 시면 오후 세시다.
구걸의 적기로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야밤에, 미명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시간을 골라 몰래 모이지 않았다.
사도들은 장애인을 향하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그에게 들리게 명령했다.
아마도 큰 소리로 명령했을 것이다.

제자들의 이 모든 행위는 공개적이었고 투명했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은 결코 무례하거나 방자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천 명으로 수가 늘었다는 사실을 과시하지 않았다.
만일 초대교회가 정치적이었다면 그들은 수가 그 정도 늘자 분명 총독이나 대제사장, 산헤드린에 몰려가 시위를 했을 것이다.
예수 재판의 무효를 선언하며 관련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자신의 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적으로 행동하되 참으로 공손하고 과시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수보다 그들 행동의 질적 특징을 주시했을 것이다.
아, 이것이 성도의 모범이다.
과시적이든지, 도피적이든지 두 극단만 왔다갔다 하는 나와는 얼마나 다른가!